사진가·요리 연구가 활동
통영살이 40년 첫 책 발간
열두 달 별미 상세히 소개
음식으로 여행하는 느낌

책을 한 권 읽었을 뿐인데 통영에서 한 일 년 잘 먹고 잘 산 것 같은 기분이다. 통영에 있는 출판사 남해의 봄날이 낸 <통영백미>는 통영 음식에 대한 책이다.

◇40년 통영 음식 기록

책을 쓴 이는 이상희(57·사진) 씨. 이분을 어떻게 소개하는 게 좋을까. 우선 요리 연구가로 통영음식문화연구소 소장이다. 또, 때론 압도적으로, 때론 푸근한 느낌으로 통영 풍경을 담아내는 사진가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항남동에서 멍게 전문 음식점을 운영한다.

충청도 출신인 그가 통영에 반해 정착한 게 1984년. 통영에서 살며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통영살이 40년, 사진가로 요리 연구가로 온 통영을 샅샅이 돌아다닌 이력으로 치면 이미 충분한 통영 사람이다. 처음에는 통제영 음식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마흔셋에 위암 선고를 받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통영 제철 음식재료에 눈을 떴다. 40년 동안 돌아다니며 쌓은 기록이 이번 책의 토대가 됐다.

저자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책이다. 물론 사진으로는 <통영은 맛있다>(강제윤, 생각을담는집, 2013년) , <섬에서 섬으로 바다백리길을 걷다>(전윤호, 남해의봄날, 2013년)를 포함해 여러 책에 참여했었다. 책 날개 저자 소개에는 '2019통영문화재야행'과 '유네스코 국제심포지엄' 만찬을 맡아 진행했고, <한국인의 밥상>, <밥상의 전설>, <한국기행> 같은 방송에 출연하거나 자문위원을 했다고 적혀 있다. 사실 이번 책에 믿음이 가는 건 그의 화려한 경력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부분 때문이다.

"음식의 근본을 공부하고 연구할 때 내게 최고의 선생님은 시장과 섬의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아내다. 그들에게 묻고 이야기 나누고 함께 음식을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178쪽)

책은 1월에서 12월까지 달마다 대표적인 통영 음식을 '백미'로 소개한다. 백미로 소개한 음식은 저자가 직접 요리를 하고 조리법과 함께 그 과정 사진을 곁들였다. 백미 말고도 멍게비빔밥, 개조개 유곽, 통영나물비빔밥, 물굴젓처럼 그달에 어울리는 통영 별미 음식과 재료도 함께 설명했다.

▲ 이상희 씨가 만든 통영 별미 멍게비빔밥.  /남해의 봄날
▲ 이상희 씨가 만든 통영 별미 멍게비빔밥. /남해의 봄날
▲ 통제영 음식인 개조개 유곽.  /책 갈무리
▲ 통제영 음식인 개조개 유곽. /책 갈무리

◇읽어도 맛있는 책

책장을 넘기며 목차 제목만 훑어 봐도 벌써 맛있으려고 한다. 예컨대 6월 편을 보자. 제목은 '여름은 통영의 시장에서 먼저 시작된다'다. 제목에 이어진 글은 다음과 같다.

"6월, 통영의 시장은 다른 도시보다 먼저 여름을 시작한다. 몇 걸음만 옮겨 보면 그곳은 이미 여름으로 가득하다. 5월의 시장을 채웠던 마늘 종류의 음식들이 서서히 사라지면 고구마순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육지에 고구마순과 하지 감자가 올라올 때 바다에서는 서실, 석모, 꼬시래기, 우뭇가사리 등 여름 해초가 자라며 바다를 수놓기 시작한다. (중략) 그러나 여름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바로 장어다. 6월이 시작되면 무엇보다 장어국이 그리워진다."(77쪽)

이 책은 음식 책이지만, 마치 여행 책인 것 같다. 음식 소개를 하고 있지만, 읽다 보면 머릿속에 통영 풍경이 자연스레 펼쳐진다. 이 골목, 저 골목, 이 섬, 저 섬으로 돌아다닌 그의 경험이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도다리쑥국 편을 살펴보자. 도다리쑥국은 통영에서 시작한 음식인데, 이름 그대로 도다리와 쑥으로 끓인 맑은 국이다. 도다리쑥국에는 살이 통통한 도다리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 있다. 녹색 그대로인 싱싱한 쑥 때문일까, 도다리쑥국에서 봄날 푸근한 흙 향기가 풍긴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날은 추워도 정월부터 통영 시장에는 쑥이 나오기 시작한다. 해풍 맞고 자란 어린 쑥을 최고로 친다. 어린 쑥 순은 약이다. 섬에 쑥이 나기 시작하면 쑥을 모아서 육지로 보낸다. 이 쑥을 시장 상인들이 받아 쑥향을 펼치면서 이른 봄이 오는 것을 알린다. 그렇게 섬 쑥이 나기 시작하면 땅두릅을 비롯해 이른 봄나물들이 통영의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제주도 근처에서 겨울 산란기를 지낸 도다리는 매년 2월쯤부터 통영 앞바다로 올라온다. 산란기를 지내러 살이 오를 대로 오른 담백한 도다리다, 겨울 땅을 녹이고 올라온 은은한 쑥향이 서로 만나 맑은 수프를 마시는 느낌이다. 부드러운 맛과 향이 입안 가득히 봄을 선사한다."(55쪽)

▲ 오방색 고명이 예쁜 도미찜.  /책 갈무리
▲ 오방색 고명이 예쁜 도미찜. /책 갈무리
▲ 한 상 잘 차려진 통영 복국. /이상희 씨
▲ 한 상 잘 차려진 통영 복국. /이상희 씨

사진가답게 음식 사진도 잘 찍었다. 도미찜에 올려진 오방색 고명이나 소반에 올려진 푸짐한 대구탕 사진은 당장에라도 통영으로 가고 싶게 한다.

대구탕이 아니라도 책 속의 그가 만든 음식은 대부분 통영소반에 올려두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 사진을 보고 있으면 책을 읽는 이도 귀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다. 사실 통영음식문화연구소 사무실 한 벽면이 온통 통영소반으로 채워졌을 만큼 그의 통영소반 사랑은 유별나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마련한 책이지만 저자는 그저 통영 음식에 대한 마중물 노릇 정도만 하면 좋겠다며 겸손해한다.

여기 글맛, 손맛 어우러져 푸짐하게 잘 차려진 한 상, 여러분께 권한다.

남해의 봄날. 184쪽.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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