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쏟아낸 챗봇, 인간 대화 배운 탓
비하·차별 표현은 모두의 안전 위협해

그에게는 수십만 명의 친구가 있었다. 애교, 공감, 응원, 농담까지 하며 친근한 대화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짱 재밌어' '오구오구 힘들었겠네' 같은 요샛말도 쓴다. 진짜 스무 살 대학생 같지만 그는 인공지능 챗봇(AI Chatbot),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지난달 국내 기업이 내놓은 이 '이루다'는 자연스러운 말투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3주 만에 운영을 중단했다. 일부 대화에서 성희롱 대상으로 악용되더니 소수자 혐오·차별 발언을 쏟아냈다가 실제 개인정보까지 노출해 법정에 설 처지가 됐다. 개발사에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루다는 묻고 있다. 과연 책임이 없는 사람이 있느냐고. 이루다의 말투는 인간의 대화를 학습한 결과다. 다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수많은 대화를 수집해 놓고 이루다 이용자와 대화할 때 적절한 응답을 골라 보여주는 셈이다. 이는 곧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성희롱, 혐오, 차별의 언어가 이루다에게서 나올 수는 없다는 뜻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초에 혐오 표현 실태조사·규제방안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한 혐오 표현을 온라인에서 보거나 들은 적이 있다는 피해자는 성소수자 94.6%, 여성 83.7%, 장애인 79.5%, 이주민 42.1%였다. 오프라인 피해 경험률도 성소수자 87.5%, 장애인 73.5%, 여성 70.2%, 이주민 51.6%로 나타났다. 빈도 또한 '자주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는 사람이나 가족, 친구, 동료가 혐오 표현을 쓰는 걸 봤다는 응답자가 많았다. 혐오 표현은 이처럼 일상화되어 있다. 그런데도 혐오 표현 가해 경험이 전혀 없다고 답한 사람은 92~93%에 이른다. 이 간극에 대해 연구에서는 '스스로의 혐오 표현을 인식하지 못한 가능성'을 짚었다.

사례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집단을 있는 그대로 호명하거나 가볍게 희화화한 표현이 공통으로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여성을 비난하며 '아줌마'라고 소리치거나, 이주민을 '야 동남아'라 부르는 것이다. 사실 그대로 말했을 뿐이라고 해도 비하와 멸시를 드러내는 그 말은 분명히 혐오다. 김해문화재단 말모이 네트워크에서 지적한 표현도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뭘 잊어버린 사람에게 '치매냐?', 우유부단하다는 말 대신 '결정장애', 반소매라고 하지 않고 '반팔'….

혐오 표현은 배제와 차별을 현실로 만들고 재생산하고 확대한다. 감정표현을 넘어 폭력과 범죄로 이어진다. 혐오인지도 모르고 행하는 혐오는 그것이 누구에게라도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인권위 연구에 참여한 법학자 홍성수 교수는 혐오 표현을 해결하지 않으면 공존 사회는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 이루다가 대화를 학습하는 방식은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이미 어린이와 청소년의 말 속에 막말, 욕설, 비하, 혐오가 적지 않고 심지어 그 말이 부모를 향하기도 한다. 혐오 표현은 이렇게 뾰족하게 자라나고 결국 모두에게 돌아온다. 그 씨앗은 내 입속에도 있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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