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환자에 기부코자 장발

아무리 개성시대라고 하지만 보수적인 공직사회에서 길게 기른 머리카락이 거추장스럽다고 뒷머리를 묶은 채 꽁지머리를 한 공무원이 있다. 김해시청 도로과에 근무하는 권오현(44) 주무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가 자신의 머리 모양을 바라보는 동료나 상사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는 사실을 잘 알고도 머리카락을 기르는 이유는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소아암 환자에게 가발을 후원하는 '어머나'(어린 암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 운동에 동참하려는 것이다. 이 운동은 주위 시선에 힘들어하는 소아암 환자에게 정서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발이 필요하지만 수백만 원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가격 탓에 선뜻 구입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무료로 가발을 지원하려는 취지다.

▲ 김해시청 도로과 권오현 주무관. /김해시
▲ 김해시청 도로과 권오현 주무관. /김해시

그가 동참을 결심한 사연도 남다르다.

간암이 재발한 아버지에게 자신의 간을 이식하려고 그는 지난해 초 휴직을 선택했다. 다행히 간 이식 말고는 어려울 것이라던 병원 판단과 달리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지속한 치료가 효과를 나타내자 굳이 필요는 없어졌지만 몇 달간 병원을 오가는 동안 소아암병동에서 처음 운동을 접했다. 머리카락을 길러 기부해도 되고 자연스럽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운동을 주관하는 단체에 보내도 되지만 길이가 최소 25㎝ 이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때부터 그는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함께 김해시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인 아내조차 차라리 후원금을 보내자고 말렸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돈으로 하는 후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의미 있는 기부는 아무나 할 수 없다."

곱지 않은 시선과 불필요한 오해에도 그가 머리를 기르는 이유다. 최근 복직한 그는 머리카락 길이가 25㎝ 정도 되는 오는 6월께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잘라 기부할 생각이다.

그의 착한 심성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마스크 스트랩 나눔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휴직 기간 아이들이 열중하는 고무줄 공예를 보고 나서 집에서 소일 삼아 반지, 팔찌 등을 만들어 주위에 선물했다. 이후 더 쓸모 있는 선물을 해보자고 권유한 아내 덕에 마스크 스트랩을 만들어 주위 동료에게 나눠줬고 지금도 호주머니에 몇 개씩 넣고 다니며 만나는 이들에게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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