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앨리스〉서 영감
맥주 마시며 책 읽기 가능
밤에는 칵테일바로 운영

이 어려운 시기에 새로 문을 연 창원 동네책방, 두 번째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에 있는 '화이트래빗'이다. 25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오래된 가게들이 늘어선 낡은 골목을 걷다 회색 철문을 밀고 들어가면 여기가 책방인가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한쪽은 책이 가득한 서가다. 그런데 다른 한쪽은 여지없는 칵테일바(bar). 바 끝자락 계산대가 놓인 작은 책상에 책방 주인 박효정(37)씨가 앉아 있다.

▲ 화이트래빗 입구 철문. /이서후 기자
▲ 화이트래빗 입구 철문. /이서후 기자
▲ 화이트래빗 박효정 대표.  /이서후 기자
▲ 화이트래빗 박효정 대표. /이서후 기자

화이트래빗 인스타그램 계정(@whiterabbit_books)을 보니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효정 씨가 책방을 하겠다고 결심한 게 이 즈음이기 때문이다. 그가 연말에 갑자기 책방을 하려고 생각한 이유는 남편 덕분이다.

"막연하게 책방 같은 걸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죠. 남편이 공구상을 운영하는데, 취미가 칵테일 만들기예요. 그런 남편이 칵테일바를 차리면서 바 안에 책장을 넣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자신은 본업이 있으니 바는 밤에만 할 수 있고, 낮에는 공간이 비니까 저더러 책방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었죠. 요즘 자영업이 힘들긴 하지만, 지금 시작 안 하면 앞으로는 더 못할 것 같았어요. 다 때가 있는 법이잖아요."

다시 말해 화이트래빗은 낮에는 책방, 밤에는 칵테일바가 되는 공간이다. 이름도 남편이 지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시계를 든 그 토끼를 말한다.

"저에게 남편은 앨리스에 나오는 하얀 토끼 같은 존재예요. 갑자기 나타나 나를 이상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이끌었죠. 그리고 그가 만든 칵테일, 이거 한번 마셔봐, 하고 따라준 위스키와 럼들을 한 모금 마시면 내 주위를 둘러싼 풍경이 순식간에 달라지곤 했어요.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때에도, 잔뜩 날이 서 있을 때에도, 남편이 건넨 신비로운 빛깔의 칵테일 앞에서 저는 단번에 무장해제 되곤 했죠. 그리고 책, 책들이야말로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해주고,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 주는 하얀 토끼들이죠."(2020년 12월 22일 인스타그램 게시물 중에서)

▲ 화이트래빗에서 책을 읽고 있는 손님.  /이서후 기자
▲ 화이트래빗에서 책을 읽고 있는 손님. /이서후 기자
▲ 화이트래빗 내부.  /이서후 기자
▲ 화이트래빗 내부. /이서후 기자

그러고 보니 책방과 칵테일바가 공존하는 공간 자체가 뭔가 이상한 세계 같긴 하다. 한 열 평 남짓한 책방 내부는 온통 검은색이다. 칵테일바를 중심으로 색감을 맞춘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효정 씨는 이 공간에 '토끼굴'이란 애칭을 붙였다.

"지금 공간은 남편이 5년 전부터 눈독을 들인 곳이에요. 옛날에 살던 집 근처라 익숙한 곳이기도 하고, 외진 곳에 숨어있는 가게를 만들고 싶어했거든요. 이번에 겨우 자리가 났어요. 공간이 좁아서 사람이 많이 들어오지 못하니까 딱 아지트 같은 느낌이죠?"

바와 마주 보는 서가에는 막 시작한 동네책방답지 않게 책이 한가득 이다. 책방을 위해 새로 갖춘 책이 제법 많긴 하지만, 효정 씨가 원래 가지고 있던 책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가 가져다 둔 중고 책들 사이에서 보물을 찾는 것도 이 책방의 즐거움이다. 서가에는 주로 효정 씨가 좋아하는 글쓰기와 책에 대한 책들이 꽂혀있다.

"책 선정할 때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로 해도 괜찮을지 고민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내가 좋아하는 걸 하든 베스트셀러 위주로 하든 결국 비슷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왕 하는 거 책방 운영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중심으로 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화이트래빗에서는 밤이 되어야 칵테일을 맛볼 수 있지만, 낮에도 책을 읽으며 맥주 정도는 마실 수 있다. 또, 커피, 차, 에이드, 밀크티 같은 음료도 준비돼 있다.

"검고 차가운 철문을 스윽, 밀고 들어오면 당신을 순식간에 다른 세계로 이끌어줄 하얀 토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어떻게 빠져나올지, 그런 건 미리 생각할 필요 없겠죠."(2020년 12월 22일 게시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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