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째 목장 운영 김정섭 대표
주민·자연경관·빈집 등 활용
유업-마을 활성화 연계 노력

'일 년을 꿈꾸면 곡식을 심고, 십 년을 바라보면 나무를 심고, 백 년을 계획하면 사람을 가르쳐라.'

고성군 영오면 양기마을 입구로 정동목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훈이 걸려 있다. 여기에 '마을기업'과 '식생활 우수체험공간', '우수회원 목장' 등 여러 가지 인증패가 목장을 알려준다.

1980년 시작된 정동목장은 김정섭(50) 대표가 2대째 운영 중이다.

김 씨는 20년 넘게 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목장을 운영한 부친의 영향으로 젖소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학에서 낙농학을 전공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목장 운영을 시작했는데 생산량을 제한하는 낙농 쿼터제로 큰 수익이 나지 않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국외 농업연수를 다녀와서 큰 깨침을 얻었다.

김 대표는 "연수를 통해 농업의 개념을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내가 돈을 벌어 먹고살기 위한 사업으로서의 농업이 아니라 먹을거리 생산의 소중함과 우리 농업의 가치를 지키는 긍지를 가진 낙농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초심을 기억했다.

▲ 김정섭 정동유업 영농조합법인 대표. /이영호 기자
▲ 김정섭 정동유업 영농조합법인 대표. /이영호 기자

곧바로 목장에서 수제 요구르트와 치즈 등을 생산하는 가공과 목장체험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했다.

우유 생산 단계부터 유제품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소비자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젖소는 낙농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 기준에 맞춰서 사육·관리하고 있다.

특히 동물복지를 생각해 '로봇 착유기'를 도입했다. 젖소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건강해야 좋은 우유를 생산한다는 믿음으로 생각한다. 사람이 원하는 시간에 우유를 짜는 게 아니라 젖소가 원하는 시간에 스스로 우유를 짤 수 있는 기계다.

하지만, 동물복지를 추구하는 일은 생산성 저하로 이어졌고 김 대표의 고민은 깊어졌다. 낙농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들었지만, 자신이 태어나 사는 마을을 지키는 일이 중요했다. 마을이 소멸해가는 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주도적으로 마을기업을 만들게 됐다.

김 대표는 "예전에는 우리 마을이 150가구가 넘었는데 주민들이 대부분 떠나 폐가가 많고, 거의 빈집이 됐다. 남아 있는 마을의 자원과 자연경관을 활용해 마을을 다시 살리고, 보존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정동목장이 운영하는 체험장서 유제품 만들기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정동유업 영농조합법인
▲ 정동목장이 운영하는 체험장서 유제품 만들기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정동유업 영농조합법인

목장을 운영하는 10명 안팎의 주민들과 뜻을 모아 지난 2015년 설립한 '정동유업 영농조합법인'은 이듬해 마을기업으로 지정됐다. 마을기업을 운영하고자 같이 낙농을 하는 주민들 모두 의무적으로 각종 교육에 참여하는 일이 힘들었지만 마을과 농업의 가치를 지키자는 한뜻으로 이겨냈다.

정동유업 영농조합법인은 마을기업에서 지난해 농업회사법인으로 전환했다. 현재 농협과 계약을 맺고, 각종 유제품을 350개 매장에서 판매 중이다. 김 대표는 기업인데 아직도 적은 생산량 등으로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돈을 적게 벌어도 신선하고, 깨끗한 우유를 생산하는 일은 멈출 수가 없다. 지금은 체험프로그램을 도와주시는 마을 할머니들 인건비 정도 드리는 수준이어서 쉽지 않은 형편이고, 노년층의 역량이 크지 않아 한계도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 농업을 살리고, 마을을 활성화하려는 자긍심과 포부는 확고하다.

김 대표는 "농업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한 건 우리 국민의 건강을 위해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것"이라며 "나의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도록 지속 가능한 낙농을 육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당일 체험만 하고 돌아가는 실정이지만 앞으로는 농촌문화를 체험하는 자연치유 캠프 개념으로 마을 폐가를 활용한 민박을 만들고, 할머니들의 손맛이 담긴 음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마을기업 구성원들과 가치를 공유하고, 우리가 나아질 것이란 믿음으로 마을을 생활터전으로 가꾸어 나가면 언젠가는 우리 마을을 떠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라고 기대한다. <끝>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