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씨 4년 고민하다 도전
소설 〈19호실로 가다〉서 영감
여성 주인공 정체성 찾던 공간
서가에도 여성 도서 차곡차곡

창원에 동네책방 두 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무모한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물론 동네책방은 생계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내다보건대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나름 절실함도 담겨 있다.

그래도 책방 운영은 엄연한 현실이다. 좋아하는 것과 현실 사이에 균형을 맞추며 오래오래 유지만 해도 성공한 축에 든다. 사람들이 동네책방을 찾는 건 예컨대 이런 이유다. 책방 주인이 고민해서 가져다 놓은 좋은 책을 살 수 있고, 무엇보다 이렇게 자기만의 삶을 살려는 에너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만의 삶을 가꾸려는 이들이 차려낸 동네책방 두 곳을 차례로 살펴본다.

▲ 책방 19호실 입구./이서후 기자
▲ 책방 19호실 입구./이서후 기자
▲ 책방 19호실 내부./이서후 기자
▲ 책방 19호실 내부./이서후 기자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경남도청 근처 주택가. 노란 차양이 선명한 골목 모퉁이를 사람들이 지나가다 주춤하며 기웃거린다. 다들 뭐 하는 곳인가 싶은 얼굴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앗 하고 작고 예쁜 공간이 펼쳐진다. 바닥이며 벽이 전체적으로 선연한 색감인데, 주문 제작한 원목 서가와 잘 어울린다.

책방 19호실은 지난주에 문을 열고 차곡차곡 내부를 채워나가고 있다. 요즘에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마련하는 일이 필수다. 책방 19호실 계정(@room19_bookstore)에는 처음 책방을 여는 자의 현실적인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다.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빼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네요. 내가 좋아하는 작가, 내가 좋아하는 작품만으로 책장을 꾸미는 것이 맞는 일일까 하는 생각에 한참 고민했습니다. 여긴 내 서재가 아니고 여러 사람이 드나들었으면 하는 서점인데 말입니다. 오랜 생각 끝에 절충했어요. 한정된 서가에 책을 채우려면 '선택'이 필요하고 이 책방의 책을 '선택'할 사람은 저밖에 없으니까요. 저도 알지 못하는 제 마음과 욕망, 남루한 지식까지 모두 서가에 전시하는 느낌입니다."(1월 10일 게시물 중에서)

"비어 있는 곳을 사람이 있을 만한 곳으로 만들려면 생각보다 필요한 게 많았습니다. 책방이니까 책장이나 책상 선반 같은 것은 당연했고, 인터넷을 연결한다든가 조명을 몇 개 더 단다든가 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생각해낼 수 있었어요. 너무 필수적인 나머지 생각도 못했던 게 휴지통입니다. 사람 몇이 있을 뿐인데도 필요한 것이 많더라고요."(1월 11일 게시물 중에서)

▲ 박지현 책방 19호실 대표. /이서후 기자
▲ 박지현 책방 19호실 대표. /이서후 기자

책방 주인은 박지현(40) 씨. 대구에서 태어나 직장에 다니다가 결혼 후 남편이 있는 창원으로 왔다. 책방을 열기 전까지는 독서모임을 열심히 했던, 아이가 둘인 전업 주부였다. 지금도 손님이 오면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하는 장사 초보다. '책방 19호실'이란 이름에 그가 책방을 연 이유가 담겨 있다. 영국 소설가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 <19호실로 가다>에서 가져왔다. 소설에서 주인공 여성이 자주 가는 호텔 방 번호다. 부유한 남편과 큰 집, 네 아이가 있는 이 여성은 그저 몇 시간 동안 완전히 혼자 있고 싶어 이 호텔을 찾는다. 지현 씨 역시 책방 19호실을 자신을 단단하게 해주는 '혼자'인 공간이자, 용기 내서 세상으로 나아갈 '모두'의 공간으로 설정했다.

"결혼을 하고 창원에 와서 이제 한 10년 정도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그래도 집 하고는 별개로 저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독서 모임을 열심히 하고 있었기에 책방을 열어서 사람들과 책 모임, 글쓰기 모임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공간을 만들 결심을 한 게 4년 전쯤이다. 그때 조용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면서 발견한 게 지금 책방 공간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동안 못하고 있다가 최근 여러 가지 일들이 딱딱 들어맞으며 결국 책방 문을 여는 데 성공했다. 지금도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는 지현 씨, 하지만, 스스로 수천 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평생 못할 것 같다'였다.

"꿈을 펼치는 데 있어, 가장 걸림돌이 뭘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펼쳐보겠다는 의지' 그 자체에도 걸림돌이 있었어요. 바로 고정관념과 편견, 두려움과 같은 것들이죠. 하지만, 누가 걸어봤던 길이라면, 나와 비슷한 이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 길을 걸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겠지요." (1월 17일 게시글 중)

▲ 책방 19호실 서가./이서후 기자 <br /><br /><br /><br />
▲ 책방 19호실 서가./이서후 기자

지금 책방 19호실 서가는 문학과 여성 관련 책들로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다. 일단은 지현 씨가 좋아하는 책과 관심이 있는 책들이 중심이다.

서가는 금방 다 찰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서가가 벽을 채워갈 것이다. 지현 씨가 바라던 독서모임이나 글쓰기 모임도 차근차근 준비될 것이다. 어느 저녁을 사림동 주택가를 지나다 유달리 환한 불빛이 창밖으로 새어나온다면 그곳이 책방 19호실일 가능성이 크다. 아직 개점 초기라 문 열고 닫는 시간이 변할 수 있다. 책방 19호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미리 확인하고 방문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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