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맘껏 홍보 못해 아쉽지만
널널해진 시간 덕에 요가 배워
머리 속 여러가지 생각 비우니
오히려 작업 연구 집중력 커져

국내 미술판은 여전히 코로나19에 속앓이 중이다. 연도 끝자리가 0에서 1로 바뀐 지금도 전염병이 창궐하기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많던 전시는 대부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드문드문 차려진 전시엔 일부 시민만 발걸음할 뿐이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경남지역 작가들을 2주에 한 번씩 소개한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들의 근황과 그들이 공들여 만들어 온 결과물을 만나보자.

"불안감이 생기더라고요. 일상이 주는 평온함을 즐기지 못하는 거 있잖아요. 너무 오래 쉬니까 즐거움도 크게 느끼지 못하면서 지냈던 것 같아요. 이래서 사람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걸 느끼게 됐죠."

'5년 차 화가' 강혜지(26) 씨가 지난해를 회상하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코로나19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은 시간을 보낸 그가 꺼낸 말 속에선 특정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했다. '휴식'이다. 집에서 쉬는 날이 많아진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때 툭툭 나왔다. 비가 내리던 지난 21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작업실에서 마주한 그는 연신 밝은 표정으로 얘기를 이어나갔다.

주로 '밤하늘'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온 강 작가는 붓을 놓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걸어왔다. 고향인 부산에서 예술중학교와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창원대와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 시점은 지난 2017년. 이후 작품마다 작가는 조금씩 성장했다.

▲ 강혜지 작가가 지난 21일 창원 의창구 사림동 작업실 의자에 앉아 있다. 등 뒤로 작업 중인 작품이 보인다. /최석환 기자
▲ 강혜지 작가가 지난 21일 창원 의창구 사림동 작업실 의자에 앉아 있다. 등 뒤로 작업 중인 작품이 보인다. /최석환 기자

2018년 창원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에 있던 갤러리 스페이스 1326에서 첫 개인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부산, 창원, 대구에서 열린 아트페어와 개인전, 각종 단체전 등에 이름을 올리며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지원하는 예술인 지원사업에도 참여했고, 이와 함께 단기 아르바이트도 근근이 해오면서 일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 상황이 터지면서 이런 흐름이 끊겼다. 일과 전시 모두 손에서 멀어졌다.

"전시를 열어도 마음 편히 다른 사람을 초대할 수가 없는 거예요. 지난해 10월 창원대 앞 대안공간 로그캠프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지 못하고 전시를 마친 적이 있었어요. 코로나가 심할 때는 공공기관이 문을 닫고 전시를 취소하고 그랬잖아요. 일이 없으니까 계속 쉬었죠. 다음 개인전은 아직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어요."

코로나가 일상을 앗아간 것은 분명히 좋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상황이 꼭 나쁘게만 여길 일은 아니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오히려 코로나가 그간 누리지 못했던 취미 생활을 하게 해주거나, 개인 작업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 줬기 때문이다. 그는 요가도 하고 작업실에서 개인 작품 연구도 하면서 코로나 시국을 나고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게 그의 장점이다.

"코로나 이후 요가를 취미로 시작하게 됐어요. 생각을 비우게 되니까 좋더라고요. 취미 생활을 하게 된 게 큰 변화죠. 작품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그래요. 이런 시간이 많아져서 좋아요. 요즘 효과적으로 색을 나타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올해는 푸른색을 작품에 나타내는 표현적인 기법을 더 연구해보고 싶어요. 상황이 괜찮아져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서울에서 전시도 해보고 싶습니다."

▲ 강혜지 작 'hide(2018)'. /강혜지 작가
▲ 강혜지 작 'hide(2018)'. /강혜지 작가

작가의 작업 수첩

"밤은 다양한 색 가진 어둠...먹 켜켜이 쌓아 표현해요"

'밤하늘'을 좋아합니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밤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밤하늘을 관찰하다 보면 검은색이 다 같은 색깔을 띠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어두운 색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색들을 표현하기 위해 재료와 기법에 관해 여러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두꺼운 장지 위에 묵즙을 한 층 한 층 쌓는 기법을 이용합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깊이 있는 색감에 매료돼서 현재의 작품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밤은 캄캄한 어둠처럼 보이지만 모두 다른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연구한 작품들의 표현기법은 반복의 연속입니다. 묵즙을 반복해서 쌓아 이미지를 만드는 것과 흑연으로 무수히 많은 짧은 선들을 반복해서 그리는 것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간혹 청색 분채를 써서 푸른 밤하늘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밤하늘은 고요함과 정적인 분위기로 읽힙니다. 잔잔하게 고요한 일상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삶, 그것이 저의 삶입니다. 타인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밤하늘의 동적인 흐름과 눈에 보이지 않는 상반된 기류를 찾아내서 표현하고, 우리 삶의 모습을 생각하며 밤하늘이라는 공간의 깊이 있는 모습을 그려나가고 싶습니다. 그런 밤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강혜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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