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 조작 이어 문제 유출까지
부정행위로 응시자 피해 심각

경남개발공사 채용비리 관련 재판 1심 판결이 나왔다. 사건은 일단락됐으나, 아직도 사회 곳곳에 만연한 채용비리는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에게 박탈감과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다.

언제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당연하고도 먼 가치에 이를 수 있을까. 2013·2015년 채용비리 관련 두 판결문을 통해 이번 사건을 정리해본다.

◇사건 재구성 = 공기업은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꿈의 직장이다. 그만큼 채용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반 지원자는 상상도 못할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

사건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남개발공사 ㄱ 전 상임이사는 경남도 정무부지사였던 고 조진래 전 국회의원으로부터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캠프 관계자와 관련 친목단체 회원 자녀를 직원으로 채용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ㄱ 전 상임이사는 청탁 받은 6명을 '2013년도 정규직 및 계약직 채용' 때 뽑기로 하고, 채용업무 대행업체로부터 1차 논술 문제를 빼내 청탁 대상자들에게 전달했다.

불안했던 ㄱ 전 상임이사는 논술 점수를 조작하도록 지시해 6명 모두 1차 합격자 명단에 들었다. 이후 2차 인적성검사에서 1명이 탈락하자 재시험 기회까지 제공했고, 청탁 대상자들은 면접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박재기 전 사장은 경남개발공사 사장으로 재직하던 2014년 9월에는 고 조진래 전 의원으로부터 비정규직 직원 ㄴ 씨를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박 전 사장은 '2015년 상반기 정규직 내부채용'에서 ㄴ 씨와 정규직 전환 대상인 자신의 운전기사 등 4명을 채용하기로 마음먹고 채용업무 담당자에게 시험문제와 답안을 요구했다.

대행업체 담당자로부터 시험 문제와 답안을 입수한 박 전 사장은 지원자 4명에게 시험 문제를 미리 풀어보도록 했고, 이들은 필기시험에서 1~4등으로 합격했다.

◇업무방해 = 경남개발공사 채용비리 의혹은 지난 2018년 처음 제기됐다. 경찰은 수사를 거쳐 지난 2019년 9월 경남개발공사 전·현직 임직원 8명 등 25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창원지법 형사4단독(안좌진 판사)은 지난해 11월 25일 ㄱ 전 상임이사에게 징역 2년을, 지난 12일 형사3단독(조현욱 판사)은 박 전 사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들의 혐의는 모두 업무방해다. 재판부는 이들이 각각 경남개발공사와 면접위원들 업무를 방해했다고 봤다.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서 '위계'란 행위자가 목적을 달성하고자 상대방이 오인·착각하도록 해 이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박재기 사건 재판부는 "조작 없이는 면접시험 응시 자격이 없는 지원자들이 점수 조작으로 면접시험에 응시했다면 '필기시험 점수 조작행위'는 면접위원으로 하여금 응시자의 자격증 유무를 오인·착각하게 하는 위계에 해당한다"며 "면접위원이 조작 행위를 공모 또는 양해하지 않았다면 위계에 의해 면접위원 면접업무 적정성 또는 공정성이 저해됐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엄중 처벌 = 특히 재판부는 채용비리를 사회 구성원의 기대와 신뢰를 부정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박 전 사장 양형 이유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한 직원 채용이라는 인사 원칙을 훼손하고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기회의 평등과 공정의 실현'이라는 가치를 저버렸다"며 "2015년 상반기 정규직 내부채용 절차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지원자들은 부당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큰 상실감과 아픔을 겪었을 것으로 보여 죄가 매우 무겁다"고 밝혔다.

ㄱ씨 사건 재판부 역시 "채용비리 범행은 일반 응시자들로부터 공정한 경쟁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 결과 공정한 채용 절차가 이루어질 것을 믿고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에게 박탈감과 상실감을 안겨줄 수 있다"고 판시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