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 평생교육진흥원
도내 문해교실 결실 출간
67명 인생이야기 책으로

▲ 〈 어느 멋진 날 〉67명의 할매·할배 지음
▲ 〈 어느 멋진 날 〉 67명의 할매·할배 지음

할매, 할배의 글이 이렇게 예쁠 수가 있나요. 기교 없이 써내려간 솔직함이 여느 유명한 시인들의 작품보다 감동적입니다. <어느 멋진 날>이란 책 이야기입니다. 경상남도평생교육진흥원 문해교실 지원사업을 통해 늦은 나이에 한글을 깨친 어르신들이 직접 적은 시가 담겼습니다.

문해교실 지원사업은 2015년 시작해 지난해가 5년째였습니다. 산청군청 찾아가는 문해교실 지리산학당, 하동군청 성인문해학교, 통영YWCA 성인문해교실, 가톨릭여성회관 한울학교, 남해군청 기초한글교실, 안의중학교 성인문해학교, 밀양시종합사회복지관, 거창군청, 고성군청 찾아가는 성인문해교실 고성학당, 김해시청 새로봄교실, 밀양시청 찾아가는 한글사랑 내디딤 교실, 창녕군청 찾아가는 마을문해학교, 함안군청 찾아가는 아라가야 문해교실 등 시군마다 한글 교실이 열려 있습니다. 평생교육진흥원에서는 매년 이들 문해교실 어르신을 대상으로 시화전을 열고 있습니다. 홍재우 경상남도평생교육진흥원장은 할매, 할배들의 작품들이 시화전만 하고 묻히는 게 너무 아까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난 5년 동안 제출된 작품을 모아 책으로 엮었습니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자신을 성찰할 힘이 생겼다는 뜻일 겁니다. 하여 힘든 지난 세월을 표현하며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거죠. 짧은 시에 담아낸 어르신들의 애환은 아, 하는 탄식과 한숨으로 읽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홍재우 원장이 머리글에서 왜 하나하나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한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 더러 맞춤법이 틀렸지만, 읽는 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도부 장사 나갔다가/ 청암차 탄다는 게/ 수곡차 타고 갔네/ 캄캄한 밤 걸어가면서/ 글 몰라 당한 일 엄청 울었다네/ 지금은 글 배워서 내가 가는 곳 버스/ 마음 놓고 탄다네"(김순이, '잘못탄 차' 전문)

"여태껏/ 글 모르는 나를 대신해/ 모든 글은 우리 영감이 적어주며 살았다. 우유, 너치 마시오/ 작년에/ 우리 영감 가고 난 뒤/ 처음 적은 글/ 5년 넘게 한글 교실에서/ 배워 둔 글로/ 세상과 글을 주고 받았다"(서두임, '처음 적은 글' 전문)

문맹이었다가 글을 깨치게 되면 아마도 새로운 삶이 열린 기분일 겁니다. 어르신들은 이 새로운 삶을 환하고 기분 좋은 아침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침이 왔다/ 환한 햇살에 어둠이 가고/ 만물이 시작됐다// 책보를 들고 집을 나선다/ 내 어둡던 머리도/ 부끄럽던 내 마음도/ 환한 아침을 맞는다// 시가 보이고 계산이 보인다/ 이것이 내 70 인생의 아침이구나"(강숙수, '아침' 전문)

"자고 일어나니 해가 떴다/ 해 뜬 기분이 너무 좋아!/ 열아홉 살 때/ 받아 본 연애편지/ 봉토를 뜯었다/ 사진 한 장 그리고 꽉 찬 글자들/ 뭐라고 썼는지 우짜라는 것인지/ 글 모르는 나는 답답해서 울었지/ 엄마한테 들키면 맞아 죽을 것이고/ 누구한테 보일 수도 없던 내 편지/ 읽을 수 없던 내 첫사랑/ 애만 태우고 끝나고 말았다/ 열아홉 처자가/ 여든 두 살 할머니가 되어// 공부를 하니 해 뜬 기분이야/ 해 뜬 기분이 너무 좋아!/ 보소, 이제야 내 당장 답장 할 수 있구만은/ 너…/무 늦었지요?"(곽곡지, '편지' 전문)

첫사랑이 준 연애편지를 이제야 읽게 된, 슬픈 마음과 기쁜 마음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 감정이야말로 어르신들의 새로운 삶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책 뒤편에 어르신들 생년월일과 이름, 간단한 사연이 한 분 한 분 적혀있습니다. 나지막이 그 이름들을 읽어봅니다. 이제는 자신들이 직접 읽을 수도 있고, 쓸 수도 있게 된 그 이름들을요.

책숲 놀이터, 경남 문해교실 67인 지음·초록담쟁이 그림, 1만 5000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