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연민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는 한 해로

늦은 밤. 서로 치고, 받고, 물고, 뜯고, 할퀴는지 날카로운 비명이 요란합니다. 결국 다음 날 아침 '노란스무르'가 왼쪽 이마에 꽤 큰 상처를 입고 나타났습니다. 안쓰러운 마음에, 살이 많이 붙은 먹다 남은 치킨을 주었습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제 눈치를 보다가 치킨을 먹습니다. 먹는 중에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노란스무르'는 털 색깔이 흰 바탕에 노란색인지 노란 바탕에 흰색인지 딱 잘라 말하기 힘들지만 그렇게 생긴 마당 고양이입니다. '마당 고양이'는 길고양이 중에서 단골로 사제관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며 사료를 먹는 녀석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진교성당 사제관 마당에는 이 녀석 외에도 얼룩덜룩한 무늬의 '예삐', 갈색 털의 '갈갈이', 새까만 '까르망', 하얀 털이 많은 '흰스', 다섯 마리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제일 덩치가 크고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녀석이 '노란스무르'입니다. 아마도 어젯밤 사제관 마당이라는 자기 영역을 지키려던 '노란스무르'가 침입 길고양이와 한판 대결을 벌인 것 같습니다. 물론 얼굴에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노란스무르'는 자기 마당을 지킨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고양이들은 '노란스무르'를 우두머리로 인정하고 먹이를 먹을 때도 대략 순서를 지킵니다.

2021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마음 아픈 이야기가 많이 들립니다. 그중에서도 노동자들을 위한 '중대 재해 기업 처벌법'이 반쪽짜리가 되고 누더기가 되어 버린 것과 '정인'이로 대표되는 아동 학대 범죄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과거 가난하고 어려운 시기에 먹고살려고 아등바등하다 보니 옆을 쳐다보고 뒤를 돌아볼 시간이 없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와 인권은 세계 선진국 수준입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우리 안에는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위태위태하게 목숨을 걸고 일하는 열악한 작업장의 노동자가 있어야 하고, 우리 눈 밖에서 굶주리고 학대당하는 아이들이 있는 것입니까?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다워지는가?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는 것에서 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품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저는 '연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연민은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상대의 슬픔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감정이기도 하다(위키백과)'라고 말합니다. 가톨릭 신학자 '앨버트 놀런'은 예수 그리스도를 '연민의 표상'이라고 합니다.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진 사건은 온전히 인류에 대한 '연민의 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웃의 고통과 배고픔에 깊이 공감하시며, 인간의 품위는 이웃에 대한 깊은 '연민'에서 만들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기업가와 정치인은 이웃인 노동자의 고통에 '연민'하고, 어른들은 이웃 아이들의 배고픔에 '연민'하는 새해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노란스무르'가 자기 영역의 고양이를 지키듯 우리도 우리 이웃을 지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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