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전통의 향기' 지면을 고민하던 중 알게 된 후배의 근황, 술빚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그런 것도 배우나? 하면서 떠올랐던 어릴 적 추억. 할머니는 온돌방 뜨끈한 구석에 내 몸보다 큰 독을 담요로 둘러싸고선 애지중지하셨다. 뭔지 몰랐다. 거기서 자꾸 이상한 냄새가 풍기고 며칠 지나자 뽀골뽀골 소리가 끊임없이 났다. 할머니는 그게 뭔지 알려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소문 나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가양주(家釀酒), 집에서 빚어 먹는 술. 그게 일상이었고 문화였던 시대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전의 일이다. 차 문화가 일상인 중국, 일본과 달리 우리는 술을 빚어 먹는 문화가 강했다. 문화사 차원에서 보면, 술은 권력과 관련이 있다. 아무나 술을 다루지 않았다. 술을 빚고 쓰는 것은 고대부터 제사장 권한이었다. 그런 것이 조선 후기 민간도 빚을 수 있게 된 건 일반음식이 됐다는 얘기다. 집집이 술을 담갔으니 술마다 맛이 달랐다. 술맛 소문이 나면 나그네가 그 집에 몰려들었고 더욱 소문이 퍼졌다. '명가명주'가 생겨난 배경이다.

일제는 술을 돈으로 환산하고 다시 권력으로 뺏었다. 가양주를 금지하고 일본에서 들여온 주정을 재료로 술을 빚어 판매하게 했다. 나중에는 주세법까지 만들어 관리했다. 대신 총독부가 술 세금으로 걷은 돈이 전체 세액의 33%(1933년)였다니, 이런 도둑놈들. 그러함에도 우리의 할머니들은 몰래 가양주 전통을 이었다. 지금 집에서 술을 빚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그런데 직접 술을 빚어 먹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조금씩 전통주 문화 되살리자는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지만, 본격적인 문화가 되기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듯하다.

전통주 취재하면서 돌이켜보니 술 한잔에도 정성과 풍류가 곁들여졌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겨울이면 김장을 해서 이웃에 한 포기씩 나눠 먹듯 술 한독 빚으면 지인과 한 사발씩 정을 나누는 그림, 아름답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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