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많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우선 '발'이란 낱말이다. 발은 순우리말로 '밝은'의 뜻을 갖고 있다. 백의민족 겨레의 복색 상징인 '흰'과 같다. 나라 이름 조선(朝鮮)도 새벽, 여명 따위 '밝음'을 뜻한다. 고조선의 조선도 그렇다. 또한 고조선 열국의 부족국가인 '부여'와 삼국시대 백제 수도였던 '부여' 이름도 '부옇다'는 뜻의 음역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물론 부여가 벌판이란 이름에서 연유했다는 이설이 있듯이 학문적 검증이 이뤄진 건 아니다.(여기서도 벌은 한자로 伐·弗·火·夫里로 옮겨 평야보다 붉다는 뜻에 가깝다.)

발해는 중국 북동부 산둥반도와 요동반도 사이 만(灣)으로 이뤄진 큰 바다로 서해, 황해와 다르다. 중국 고문헌에 북해로 표기된 곳이다. 발해란 이름은 황하 때문에 지어진 것이다. 백년하청이란 말처럼 사철 황하의 황토물이 바다로 유입돼, 발해는 홍수 때 근해의 바닷물이 불그레한 것처럼 항상 붉은색을 띠어 지어진 것이다. 발해는 서쪽 황하, 북쪽의 요하 등 4개 큰 강물의 집결지다.(한편 북해는 북쪽바다 뜻이기도 하고 발해→북해 유사음역(音譯)으로 봐도 될 듯.)

그런데 하필이면 발해일까? 황해, 홍해 등 붉은 빛 바다를 지칭하는 한자어 황, 홍, 주(朱) 등이 아니고 발이라 불렀을까? 발과 해는 한글·한자 합성어다. 현재 쓰이는 한자어 발(渤)은 붉다는 뜻의 우리말 '밝'의 음을 빌려 쓴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 중국인들이 자기네 한자어를 제쳐두고 우리말을 음차(音借)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오랜 옛날, 정확히 말해 상고시대 황하 하류 일대에 박달겨레 조상인 동이가 살았고, 그들이 불렀던 이름이 전승돼 붉은 바다, 밝은 바다의 '발'이라는 한글과 한자어 '해'가 섞여 생겨난 이름이라는 추론으로 귀결된다.

바다 이름 하나지만 박달겨레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발해다. 훗날 삼국통일로 패망한 고구려의 유민이 주축이 돼 세워진 남북국시대 북국인 발해국의 이름도 여기서 연유한다고 본다.

'밝'은 우리 겨레 정신과 문화의 한 원형으로 조명돼야 한다. 특히 일제 암흑기 민족주의가 고양되면서, 사대주의에 매몰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찾는 '밝 문명' 회복의 물결은 같은 맥락이다. 신화의 한 페이지에 나오는 치우와 한족 간의 큰 싸움이 일어난 곳도 역시 중국 북동부로서, 발해를 두고 상고해 볼만하다. 고조선 고토를 비정(批正)하기 위해서라도 발해가 갖는 상징성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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