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목표와 현실의 괴리 반복
과정의 상태 즐기는 하루하루로

2020년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일들로 가득했다. 연말과 새해를 집에서만 적막하게 보낸 것 또한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그동안 연말이면 모종의 의무감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새 다이어리 첫 장을 한 해 목표로 채우는 일이다. 작년 다이어리를 들춰보니 첫 장에 작년 목표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물쩍 잊고 있었던 다짐을 다시 마주하니 민망했다. 올해라고 다를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매년 해왔던 일이니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새 다이어리 첫 장을 펼쳐놓고 '무엇을 새해 목표로 삼아볼까?' 고민하는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산책하러 간다는 말에 나는 첫 장을 그대로 비워놓은 채 냉큼 공원으로 나갔다. 동네를 산책하며 주변에 보이는 풍경이나,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들을 주제로 두서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올해를 어떻게 보낼까?' 하는 질문에 부딪혔고, 그럴 때마다 잠깐씩 대화가 끊어졌다.

돌이켜보면 매년 꿈이나 목표를 정하는 습관은 학교에서 익힌 것이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교에서는 나의 꿈 글짓기, 꿈 발표하기, 꿈 그리기 같은 대회가 매년 열렸다. 꿈이 장래 희망, 비전 같은 단어로 대체되기도 했지만, 맥락은 비슷했다. 교실은 '꿈꾸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기대로 가득했다. 하지만 꿈은 현실에 잘 밀착되지 않을 때가 많았고, 목표는 달성하지 못할 때가 훨씬 많았다. 돌이켜보면 화려한 미래를 꿈꾸면서 얻은 것보단 실패를 받아들이는 법에 더 익숙해진 것도 같다.

"나는 꿈이 없어"라고 말하던 유재석의 말에 많은 청년들이 위로를 받은 것은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꿈을 좇았지만, 막상 손에 쥔 것은 없는 청년들에게 학창 시절의 부푼 꿈은 크고 작은 실패의 반증이기도 하다.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은 목표를 가지면 스트레스를 받으니 단지 '하루하루 열심히' 산다고 말했다. 목표와 현실의 괴리를 헤매온 나에게 그 장면은 특별했다. 유재석에게 꿈이 없다고 해서 그가 길 잃은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아니며, 실패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추운 겨울 밤거리를 걸었을 뿐인데 복잡했던 마음이 훈훈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까 쓰다 만 계획표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종착지보다는 이정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는 과감하게 목표 세우기를 생략했다. 대신 다이어리 첫 장에는 매일을 풍요롭게 만들 습관 기록표를 그렸다. 열흘이 지난 지금, 나는 어렵지 않은 것으로 몇 가지 습관을 들이고 있다. 규칙적으로 잠자리에 들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일기를 쓰는 일은 시시해보이지만, 덕분에 피하고만 싶었던 아침이 하루의 활력이 되고 있다.

목표 없는 한 해를 시작한 지 이제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런 시간이 쌓인다면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는 확신이 든다. 물론 한 해의 목표는 일 년을 살아갈 동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목표를 놓아야 했던 작년의 기억이 떠올라 계획을 세우기가 막막하다면, 올해는 목표를 세우지 않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모든 과정의 상태를 즐기는 목표 없는 한해를 목표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2021년은 가벼운 산책과 활기찬 아침처럼 매 순간을 열심히 누리는 하루가 모인 일 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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