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순천만 들녘 홍곡(鴻鵠)의 울음소리는 지상의 평화를 부르짖는 장관이다. 북녘 비무장지대 평원에 지천으로 그들의 양식을 훔치는 철새 떼, 큰기러기와 고니를 여기서 볼 줄이야. '참새 제비 따위가 어찌 홍곡의 뜻을 알리오?' 그 고고성을 의인화해 본다. 순천 동천강 하구 습지에 맞붙은 광대한 논 습지에서 홍곡의 장엄한 울음을 누가 연출하였을까. 동천이 흘러 만든 습지는 누런 갈대가 끝없이 펼쳐져 습지생물과 새들의 낙원이고 그래서 갈대는 풍요다.

K가 이십 대 초반, 정처 없는 청춘이었을 때다. 무얼 알지도 못했고 알 수조차 없던 시절이라 다만 막연함이 그를 가로막고 서 있다는 공허만 알 뿐이었다. 완행열차를 타고 홀로 찾은 곳이 순천이었고, 그때 하늘을 거스르지 않고 순하는 고장이란 어설픈 시를 쓴 기억과 순진한 영혼은 읍내 골목길 어느 여인숙에 여장을 풀고 외로운 꿈을 꾸었다.

다시 한 세대의 풍상을 겪고 찾은 이 고을 낙안 읍성엔 놀랍게도 임경업 장군의 선정비와 비각이 뚜렷이 서 있다. 비각 안내문에는 "인조 6년(1626) 이곳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2년 후 내직으로 옮겨갈 때까지 낙안읍성을 쌓는 등 선정을 베풀고…이 지역에는 임 군수를 신봉하여 매년 정월보름이면 낙안면 주민들에 의해 큰 제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적었다. 임경업은 최영 장군과 함께 민간 구전설화의 대상이 될 만큼 경륜이 뛰어난 무인으로 비운에 돌아가신 어른이다. 마침 읍성의 가로변 붉은 동백꽃은 진홍색을 피워 차가운 눈바람을 맞고도 의연하였는데 꽃의 크기는 작았으나 꽃 순에 코를 대고 흠향하였다. 세월은 흘러도 변치 않는 것은 동백의 빛과 향이요, 임 장군의 단심과 유풍이며, 그를 섬기는 백성들의 마음 또한 신앙의 한 갈래일 것이다.

이날 저녁 왕 벚꽃 마른 나무가 열병한 동천 옆 풍덕동에서 동짓달 기망의 달빛은 붉고 큰 원형이 삭아드는 모습. 다음날 아침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에 뿌려진 소금 같은 하얀 눈발. 나그네가 이 고을의 속곳까지 알 수 있을까만 순천은 이런 생태환경과 유적만으로도 그 이름값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낙안읍성은 본래 벽돌 크기의 다듬은 돌로 쌓은 석성인데 복원과정에서 요량 없이 암석째로 가져다 얼기설기 엮어 일본 교토의 왜성 같기도 하고 조선 성벽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또 습지를 가로질러 설치한 탐방로는 철새나 생태계에 위해를 주지나 않을지,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만을 염두에 둔 것이란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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