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폭설 악천후에 주문 급증
대행업체 중지하면 항의 빗발
사고나면 치료비는 노동자 몫

7일 새벽부터 경남 전역에 내린 눈으로 도로 곳곳이 얼어붙으면서 오전부터 운행에 나선 배달노동자들의 미끄럼 사고가 잇따랐다. 악천후 배달중지에 대한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빙판길 이륜차 운행 위험 = 이날 오전 8시 15분께 창원시내 도로는 쌓인 눈 일부가 얼어붙어 미끄러웠다. 이륜차를 직접 운행해 본 결과, 감속주행을 할 때마다 차체가 균형을 잃어 정상적으로 운전하기가 어려웠다. 낮에 햇볕이 들면서 큰길에 쌓인 눈은 조금씩 녹았지만, 골목길(이면도로)은 그대로였다. 이날 도내 대부분 지역에서 낮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눈이 녹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배달노동자 ㄱ 씨는 "동료들 이야기로는 도로변은 그나마 낫지만 비탈길이 많은 동네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날 오전, 많은 대행업체가 배달을 일시 중단했다. 눈이나 비 등으로 악천후일 때 각 대행업체 관리자끼리 상황을 공유하며 중단 여부를 의논하지만, 결정은 업체 몫이다. 창원시내 배달대행업체 규모는 80여 개로 알려졌다. 대행업체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한 배달대행플랫폼 관계자는 "각 허브점(지역 배달대행업체) 운영 중단 여부는 각자 판단에 맡기지만, 창원과 김해 지역 대형 가맹사업체 배달운행은 본사 판단으로 오전 10시에 중지했다가 오후부터 다시 열었다"고 말했다.

◇배달노동자 부상 속출 = 오전에 주문을 받지 않았던 창원시내 배달대행업체들도 점심시간부터 대부분 영업을 시작했다. 오전 11시부터 운행을 재개한 업체 대표 ㄴ 씨는 "기상상황을 보고 새벽 4시쯤 운행을 중단했는데, 요식업소 가맹점들이 '정상 운행하는 업체도 있는데 왜 시스템을 중단하냐'고 오전 내내 불만 전화가 걸려 왔다"고 말했다. 배달대행업체들은 가맹점과 계약을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배달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영업을 재개하자 도로에서 미끄러져 다치는 배달노동자가 속출했다. 창원시 상남동 인근 대행업체 한 곳은 영업재개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배달노동자 6명이 다쳐 일을 접어야 했다. 주말까지 한파가 이어질 예정이라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부상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넘어져 다치면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어 치료비·차량 수리비를 전부 노동자가 해결해야 한다.

▲ 7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의 얼어붙은 이면도로가 녹지 않고 있다. /배달노동자
▲ 7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의 얼어붙은 이면도로가 녹지 않고 있다. /배달노동자

조봉규 라이더유니온 경남지부장은 "경남지역은 수도권만큼 눈이 많이 오지 않기 때문에 대행업체에서 배달노동자 출근을 요구하고, 노동자 개개인이 안전을 이유로 거부할 시 불이익을 주는 일도 있을 것"이라며 "어제 수도권 배달의민족·요기요 등은 일찍 배달을 중단했지만 쿠팡은 운행을 계속해 라이더들의 불만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럴 때 배달수요는 오히려 늘어나는데, 소비자·자영업자들도 배달노동자 안전을 위해 폭설이나 폭우가 올 때는 가급적 주문을 자제하거나, 배달지연이 생기더라도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악천후 때는 주문 줄여야 = 이처럼 소비자·요식업소·배달대행업체·배달노동자로 얽힌 갑을 관계는 악천후에도 위험한 배달이 이어지는 주요 원인이다.

ㄴ 씨는 "영업은 할 수 있어도, 다치는 노동자들은 다음날부터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이라며 "악천후일 때는 플랫폼 기업이 배달앱 주문을 막아주든지, 정부가 특별한 기준을 세워 배달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방역대책으로 대다수 자영업자들이 배달산업에 기대게 해 놓고 일선에서 배달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대책을 모른척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배달노동자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은 이날 오전 11시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고 "6일 폭설, 7일 빙판길과 같은 상황에서는 플랫폼 기업이 배달을 막도록 하는 법적 기준과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악천후 근무를 배달노동자 선택으로 돌렸을 때 경험이 적거나 생계가 급한 사람은 위험을 감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쿠팡처럼 악천후 할증배달요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평소 기본배달단가를 높여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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