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결정 떠넘긴 국회
정치 복원해 희망 주고 국민고통 해소를

지난 연말이었다. 출근길 라디오를 듣는데 한 출연자가 "역설적이긴 하지만 독재가 그립다"는 말을 했다. 충격이었다. 아무리 '역설'이라는 전제를 달았다고는 하더라도 독재가 그립다니. 출근길 내내 곱씹었더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는 있었다.

박정희 시대에 나서 전두환 시대에 어른이 됐던 내 삶에서 내 철학을 형성한 시기는 죄다 독재자가 권력을 휘두를 때였다. 국민의 여망과 저항으로 독재자는 몰아냈지만, 이후로도 한동안은 독재와 다르지 않은 정권 아래서 살아야 했다. 전두환·노태우에 이어진 3김 시대 역시 정치적 독재는 아니었지만 '당내 독재'는 이어졌기 때문이다. '독재가 그립다'는 얘기는 3김처럼 강력한 카리스마에 바탕한 리더십이 없는 요즘의 정치권에 대한 쓴소리였지 싶다.

정치, 특히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더딜 수밖에 없다. 서로 생각과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이 하나의 대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니 왜 시끄럽지 않겠는가. 그런데 요즘은 정치가 실종됐다. 심지어 미국 대선에서마저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를 연방대법원으로 끌고가려는 시도도 있었지 않았나.

민주주의의 요체는 '선출된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있다. 그런데 최근 국내 주요 사안들을 살펴보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민주적 통제도 받지 않고 정치적 사건을 판단'했다. 물론 이는 정치권이 자초했다는 게 바탕에 깔려 있다.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조항을 위헌이라며 2020년 말까지 법 조항을 개정하라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국회는 손놓고 있었다. 그러면서 찬반 논란이 컸던 '낙태죄'는 정치의 영역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고 법의 영역에서 결정됐다. 지난해 공수처법 등의 처리를 두고 여야 대립이 결국 물리력 행사로까지 이어졌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정치가 아니라 검찰에 맡겨졌다. 국회에서 검찰에 하는 고소·고발의 대부분은 사실 대화와 토론, 타협 등 정치적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선출되지 않은' 법의 영역으로 떠넘기는 것은 정치를 포기한 것밖에 안 된다.

단, 그 정치 행위는 예전처럼 어둠 속에서 야합하거나 지도자의 카리스마로 찍어누르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또다른 측면에서 '독재가 그리운' 까닭은 정치권의 저런 무책임함에 기대어 이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압도하게 됐기 때문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파문이 그렇다. 검찰은 선출된 권력이 아니다. 선출된 권력(대통령)에 맞선 것은 '민주적 통제'를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역시 '법'의 판단만 있었다.

야권 일각에서는 현 정부를 '독재'라고 칭한다. 정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일견 일리 있는 주장이다. '모든 것을 법대로'라고 할 거면 정치는 왜 있고, 국회는 왜 필요한가? 하루빨리 정치가 복원돼 국민의 팍팍한 삶을 보듬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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