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공한 30대 타투이스트, 국내에선 '의료법 위반 행위'
"타국서 예술가·장인 대접 반면 우리 사회 범죄자 취급 설움"

한 타투이스트(tattooist·문신사)가 지난해 11월 중순께 이메일을 보내왔다. "창원 내 100명이 넘는 작업자(타투이스트)가 세금도 못 내고 법의 울타리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무직자 신세인 상황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타투가 불법인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단체 메일인 줄 알았는데, 뒤늦게 전화를 걸어보니 아니었다. 5년 차 타투이스트 마타(MATA), 지원근(39) 씨. '마타'는 그의 활동명이다. 그가 운영하는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 '지타투스튜디오' 문을 두드렸다.

◇타투와 만남, 그리고 귀향

마타 씨는 '마산 토박이'다. 마산에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진주에서 예술고, 울산에서 미대를 차례로 나왔다. 그가 타투를 접한 곳은 필리핀이다. 여행업을 하면서 7년 정도 살았는데, 골목골목 타투숍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타투를 배우는 일까지 이어졌다. 미술을 전공했기에 3~4년 작업하면서 실력이 빠르게 늘었다. "나도 한 번 해볼까 싶어 도전했는데, 그때 친구들이 괜찮게 봐준 것 같아요. 계속 해달라는 요청을 받다 보니 돈을 안 받고 해줬고, 한국에서는 하기 어려울 만한 분량을 연습할 수 있었죠."

필리핀은 타투에 관한 인식이 좋고 제도 또한 우리나라보다 잘 정비돼 있었다. "동네마다 타투인들이 뭉친 유니언이 있고, 그래서 대회도 열리고 생활화돼 있더라고요. 타투숍을 운영하려면 허가와 위생교육을 받아야 하고요."

▲ 타투 5년 차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는 지원근 씨.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타투 5년 차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는 지원근 씨.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2019년 11월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국내와 달리 외국에서는 한국인 타투이스트 명성이 높다. "미국, 호주 등 해외 유명 타투숍에서 최고 실력자는 대부분 한국인이에요. 새로운 기법과 장르를 만들어내고 유행시키고 있죠. 브래드 피트와 같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한국에서 타투를 받아갈 정도로 '타투는 한국이다'라는 인식도 있고요." 그래서 귀국이었지만, 타투 유학을 오는 기분이었다. 이후 코로나 사태가 겹쳤고, 고향에서 타투를 해보자는 마음이 더 커졌다. 타투숍은 커피숍처럼 꾸몄다. 열린 교육장, 쉬어가는 곳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매주 목요일에는 무료 그림 수업을 열고 있다. 블로그(blog.naver.com/umcaprio)와 인스타그램 계정(@mata_tattooer, @jitattoostudio)도 운영 중이다.

"학비가 없는 어린 친구들한테는 마산에서 서울이나 외국은 물론 부산까지 가는 것도 멀잖아요. 이곳에서 그림이나 타투를 배울 수 있었으면 해요. 실제로 필요한 사람들이 썼으면 해서 문을 열어놓는 편인데, 서브컬처(subculture·하위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그림이나 타투 정보를 공유하는 장으로도 활용했으면 해요."

◇음지에서 양지로

막상 일을 시작했지만,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타투업으로 등록할 수 없어 타투숍 공간은 화실로 쓰고 있다. 타인의 몸에 문신을 새기는 일은 법의 보호를 못 받는 실정이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문신 시술이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1992년 대법원 판례가 있어 의사가 아닌 사람이면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의료가 아닌 미용·예술 목적이 많다.

마타 씨는 얼굴을 드러내는 인터뷰에 용기를 내야 했다. "인터뷰 약속을 잡고 나서 동료들이 오히려 신고나 제재로 돌아오지 않을지 걱정하더라고요. 우리도 당당하게 수익을 신고해 세금도 제대로 내고, 위생교육도 받고, 국민으로서 하나의 사업으로 보호받고 싶은데 말이죠. 작업하면서도 간혹 눈치를 보면서 문을 잠그게 되고, 타투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마찬가지일 거예요."

▲ 창원 마산회원구 합성동 '지타투스튜디오' 내부. /지타투스튜디오
▲ 창원 마산회원구 합성동 '지타투스튜디오' 내부. /지타투스튜디오
▲ 고객이 팔에 '까미'라는 강아지를 타투한 결과물. <br /><br /> /지타투스튜디오
▲ 고객이 팔에 '까미'라는 강아지를 타투한 결과물. /지타투스튜디오

외국에서 처음 타투를 배우다 보니 한국에 들어와서 느끼는 온도차가 크다. "'우리나라 상황이 열악해 다들 외국으로 나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서는 숨어 있다가 외국으로 나가면 아티스트 대접을 받으니까요. 외국에서는 예술가나 장인 이미지라면 한국에서는 부모한테도 죄송한 직업이니까 타투업을 하는 이들이 서러워하고 힘들어하기도 해요."

그는 타투이스트가 처한 사정을 호소했다.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으니 수입은 말할 것도 없고요. 간판을 못 걸다 보니 오피스텔 등을 빌려 취약한 곳에서 작업하고, 손님들도 숨어서 받아야 하는 이런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이걸 악용해 협박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여성 타투이스트 비율도 높아지고 있는데, 나쁜 마음을 먹은 손님들이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비용을 내지 않고 가버리면 그냥 보내줘야 해요."

◇용기가 필요했던 인터뷰

고용노동부는 2015년 12월 신직업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타투이스트가 포함돼 있었다. 정부가 타투 합법화를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받는 이유다. 기대가 컸지만, 이 정책 역시 시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돼버렸다. 마타 씨도 답답해했다. "지금은 의료행위가 가능한 사람들만 타투 시술의 법적 권한을 갖고 있어요. 우리나라만 이상하게 오래전 판례 하나를 기준 삼아 판결이 재탕, 삼탕 되는 것 같아요. 타투 학원에서 배출되는 학생도 많은데, 공인되는 것도 아니고 가이드라인이 없어 그냥 시장으로 나가게 되죠. 그러면 자연스레 세금을 안 내는 상황에 익숙해지고, 제재를 받으면 '그만두고 다른 일 하면 되지'라는 식으로 흘러가기도 해요. 타투에 관한 인식이 점차 나아지고 타투를 받는 사람들도 그래프로 보면 쭉쭉 올라가고 있는데, 법만 여태 못 따라오고 있죠."

다만 최근 변화의 물꼬를 트는 듯해 기대도 크다. 박주민(더불어민주당·서울 은평 갑) 의원 등 10명은 지난해 10월 말 '문신사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문신사 면허와 업무 범위, 문신업자 위생관리 의무, 문신업소 신고와 폐업 등을 규정한다. '문신행위'는 바늘 등을 사용해 인체에 독성이 없는 색소로 사람의 피부에 여러 가지 모양을 새겨 넣는 행위로, '문신사'는 자격을 갖춰 보건복지부 장관 면허를 받은 사람으로 각각 정의한다. 타투이스트가 전문 직업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얘기다. 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넘어가 있다.

▲ '마산 토박이' 타투이스트 지원근 씨.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마산 토박이' 타투이스트 지원근 씨.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아울러 지난해 2월 말 출범한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타투유니온지회를 비롯해 노회찬재단·전태일재단·한국타투인협회·전국언론노동조합·사천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거제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등 전국 시민사회단체는 '타투할 자유와 권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공대위는 지난해 11월 3일 '헌법에 명시된 직업선택·표현·예술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며 의료법과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보건범죄단속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지난해 9월에는 일본 최고재판소가 문신 시술은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마타 씨는 관심을 호소하며 힘을 보태달라고 했다. "타투를 하는 사람들을 범죄자로 보는 시선도 있어요. '숨어서 나쁜 짓 한다'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으면 해요. 시스템 문제로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그런 상황은 잘못됐다고 봐요. 타투 합법화를 위해 자기 벌이는 제쳐놓고 밖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분도 많은데, 힘이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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