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서 쫓겨난 창원병원 의료진에 숙소 제공
국외유입 격리자 숙소, 노숙자에게 빈방 제공 계획도
감염 염려해 직원들 그만둬 미용사 아내와 둘이서 운영

누리꾼 사이에서 '혼나다'는 말은 간혹 다르게 쓰인다. '꿈나무카드(아동급식카드)는 안 받고 카드 소유자께는 그냥 드린다는 이 음식점, 혼내주러 가죠.' '폐지 줍는 어르신 손수레에 광고 달아주고 광고비 주는 순댓국집, 가만두면 안 됩니다.'

먹어서, 한 번쯤 들러서 꼭 좀 혼내야 할 대상은 나눔을 실천하거나 더불어 사는 의미를 일깨운 이들이다. 많이 주문하고 자주 찾아서 주인장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해 주자, 돈 계산 하다가 혼쭐이 쏙 빠지게 해주자는 뜻으로 누리꾼은 혼날 곳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곳도 혼 좀 나야 한다. 손님맞이에 정신이 없도록 해야 한다. 창원 성산구 AT비지니스호텔, 김재이(43) 대표다.

▲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AT비지니스호텔 김재이 대표가 호텔 객실 앞에서 '덕분에 챌린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재이 대표는 창원병원 코로나19 의료진에게 숙소를 제공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AT비지니스호텔 김재이 대표가 호텔 객실 앞에서 '덕분에 챌린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재이 대표는 창원병원 코로나19 의료진에게 숙소를 제공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의지 = 그는 "젊어서 그럴 수 있었다"고 했다. 코로나19 1차 대유행 시기였던 2020년 3월, 김 대표가 내린 결단은 큰 울림을 줬다. 그 무렵 국가감염병 지정병원인 창원병원에서는 의료진 209명이 병원 근처 호텔에 머물며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209명 중 150명은 창원 성산구 중앙동 한 호텔에, 간호조무사·방사선사·병리사·지원 인력 등 59명은 같은 동 다른 호텔에서 숙박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있다'는 항의가 59명이 묵고 있던 호텔 측에 전해지면서 의료진은 쫓겨나듯 호텔을 나와야 했다.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 공분이 일었다. 의료진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한 책임을 창원시에 묻기도 했다.

창원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댓글에 김 대표는 속상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고, 운영 중인 호텔에 무료로 의료진을 모시면 되겠다고 결심했다.

김 대표의 '무료' 제안에 병원 측은 손사래를 쳤다. 김 대표는 한발 물러서 '최저가'를 말했고, 병원 측은 감사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쫓겨난 의료진 59명 가운데 집에서 출퇴근하기로 한 36명을 제외한 23명은 김 대표의 호텔에서 1인 1실로 약 4주간 묵었다. 김 대표 배려 덕에 창원병원은 대구·경북지역 코로나19 확진자 136명과 도내 확진자 3명을 치료하는 등 감염병전담병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4월 말 감염병전담병원 지정 해제 때 받은 코로나19 검사에서 의료진은 모두 '음성' 판정도 받았다.

김 대표는 "젊으니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추진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쉽게 표현했지만, 과정은 누가 봐도 녹록지 않았다. 김 대표 호텔과 한 상가에 있는 30여 곳 사업주를 만나 설득한 일,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직원들이 그만둔 일, 직원 자리를 메우고자 천안에서 7년가량 미용실을 운영하던 아내(이수진·38)가 모두 접고 창원으로 온 일, 아내와 단둘이서 호텔 운영을 하게 된 일이 지난 3월을 전후해 일어났다.

영광보다 상처가 더 큰 상황. 그럼에도 그는 언제든 같은 선택을 하겠다고 했다. 그저 '모두 잘됐으면 좋겠다'며.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매번 신경 써 주시고 사장님 사모님 덕분에 너무 편하게 있어요. 너무 잘해주셔서 집 빈자리를 조금씩 잊고 있습니다.'

고이 간직한 의료진의 감사 메시지는 김 대표 의지를 알게 했다.

◇생존 = 호텔 관련 학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호텔에서만 20년 넘게 일했다. 문지기로 시작해 프런트, 객실, 식음, 회계, 구매, 인사, 홍보 등 거치지 않은 업무가 없다. 부산과 인천·창원을 오갔고, 한 호텔의 사업부 이사까지 올랐다. '호텔을 직접 경영하고 싶다'는 오랜 꿈을 좇아 직장에서 나온 건 2019년. 그해 11월 김 대표는 창원에 AT비지니스호텔을 열었다.

김 대표는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벚꽃축제를 비롯해 창원권 주요 축제·행사가 업계 대목임을 알았다. 그 시기를 잘 활용해 꿈을 마음껏 펼치려 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닥친 코로나19에 행사는 하나둘 취소됐고 지난해 호텔업계는 평년 대비 80% 가까이 고객이 줄어드는 상황을 맞았다. 대출이자며 원금이 감당하기 어렵기는 김 대표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그는 마냥 웅크려있지 않았다.

"창원병원 의료진에 이어 4월 국외 유입 격리자와 그 가족을 위해 호텔을 제공했어요. 빈 객실을 내버려두느니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큰돈을 벌진 못했어요. 오히려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에 우리 호텔을 기피하는 분들이 생겼죠. 하지만 아내의 전적인 믿음 덕에 국외 유입 격리자들도 무사히 모실 수 있었어요. 후회는 없어요."

호텔은 김 대표에게 직장 그 이상의 의미다. 가족이 머무는 집이자, 누군가를 초대하는 공간이다. 지난해 3월부터 10개월가량 '호텔 안에서만' 머물 수 있는 이유도 어쩌면 거기 있었다.

"아내는 주간, 저는 야간 업무를 보면서 있어요. 3월부터 우리 부부는 호텔에만 있죠. 밖에 나간 건 손에 꼽혀요. 조식 식재료를 사고자 근처 마트에 다녀온 게 다였던가. 모두 배달 주문하고 있어요. 바깥 공기가 마시고 싶을 땐 건물 옥상에 올라가요. 우리 부부가 확진되면 이 호텔은 문을 닫아야 하니까. 우리 호텔을 찾았던 손님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더 철저히 하죠."

▲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AT비지니스호텔 김재이 대표가 호텔 로비에 서있다. 로비에는 'BEST 숙박업소' 상패가 빛난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AT비지니스호텔 김재이 대표가 호텔 로비에 서있다. 로비에는 'BEST 숙박업소' 상패가 빛난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공존 = 김 대표는 어릴 때부터 '남에게 잘 퍼준다'는 소리를 자주 듣곤 했다.

학창시절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이유에 기타 10개는 족히 살 수 있는 값비싼 옷을 친구에게 넘긴 적도 있다. 베트남 호찌민시로 자원봉사를 갔던 20대 때는 예정된 일정을 넘기고 눌러앉아 1년 반을 더 봉사했다.

그 성격과 호텔은 궁합이 잘 맞았다. 하룻밤의 짧은 인연일지라도 호텔을 찾은 손님에게 모든 걸 베풀어주는, 편안하게 머물다 갈 수 있도록 하는 배려심은 김 대표가 늘 품고 행했던 것들이었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하는 일을 김 대표가 할 수 있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그에게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코로나19로 노숙자들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뉴스를 봤어요. 비즈니스 고객이 주로 찾는 우리 호텔은 원래 주말 빈 객실이 많은 편인 데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지난해 11월 이후 손님 95%가량이 준 상태니까. 노숙자들을 위해 빈방을 써도 좋겠다고 여겼죠. 토요일 오후 8시쯤 오셔서 하룻밤 편안하게 주무시고 다음날 아침 나가는 식으로 말이죠. 두 달여 전인가 구청에 제안을 했는데 아직 답변은 못 받았어요. 제가 금전적으로 할 수 있는 건 크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돕고 싶네요."

사회적 거리 두기가 몇 단계든 함께 살아가며 위기를 헤쳐갔으면 좋겠다는 김 대표. '잘 머물다 갑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다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호텔 안에서 묵묵히 제 일을 하는 그다.

"AT비지니스 호텔의 AT가 'always try'라는 뜻이거든요. 제가 직접 지었어요. 방역이든 나눔이든 항상 노력해야죠. 살갑게 살아가려고요."

김 대표 옆 'BEST 숙박업소' 상패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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