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지 작가 개인전 '안녕: 파인 땡큐, 앤 유?' 플립북 상자 눈길
회화 등 30여 점도 전시…김해서부문화센터 내년 2월 28일까지

'놀라지 마세요. 센서가 감지되면 작품이 움직입니다. 눈으로만 관람하세요.'

전시장에 들어섰더니 작품이 알아서 움직였다. 소리 없이 조용하던 전시장 안이 '다다다다' 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전시장 입구 쪽 모퉁이에 놓인 네모난 나무 상자 안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종이책장이 빠른 속도로 넘어가고 있었다. '휙휙' 하고 지나가는 속도가 재빨랐다. 뭔가 하고 봤더니 흰 종이에 얼굴이 빨갛고 머리가 고불고불한 사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작품을 보는 순간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 끄트머리에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형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옆으로 발걸음을 옮기니까 가만히 있던 다른 책장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가기 시작했다. 누가 더 빨리 넘어가느냐며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듯이 다 같이 움직였다.

요란한 소리의 주인공은 지난 23일부터 김해시 율하동에 있는 김해서부문화센터에 차려진 박현지 작가의 개인전 '안녕: 파인 땡큐, 앤 유?'전에 나온 플립북 박스(flip book·여러 종이 위에 움직임을 연속으로 그려 한 장씩 훑는 애니메이션의 한 방식) 작품이다. 가로 55㎝, 세로 68㎝ 크기로 제작된 책장 속 그림들은 각기 다른 그림으로 그려졌다. 움직임 센서가 부착돼 있어 작품 주변에 다가서면 자동으로 책장이 넘어간다. 종이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림 속에 나타난다. 누구나 일상적으로 누리던 일반적인 생활상이 수십 장의 흰 종이에 그려졌다. 전통시장에서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파는 풍경이나 생선을 든 상인, 흥겨운 춤사위를 선보이는 이미지 등이 종이 안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 박현지 작가의 개인전 '안녕: 파인 땡큐, 앤 유?'전 출품작.  /김해문화재단
▲ 박현지 작가의 개인전 '안녕: 파인 땡큐, 앤 유?'전 출품작. /김해문화재단

자동 센서가 달린 작품 뒤편으로는 수동으로 움직이는 책장 작업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로 50㎝, 세로 32㎝ 크기의 플립북 상자 작업이다. 가로와 세로 모두 24㎝로 만들어진 작품도 나왔다. 앞선 작품보다 크기는 더 작지만, 종이에 그려진 이미지는 모두 같은 주제로 표현됐다. 상자에 붙은 오른손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커피 한잔의 소소한 행복이라고 적힌 결과물과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린 형체가 나타난다. '휘리릭' 하고 나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얼개가 색다르다.

이것 말고도 유리 거울에 색감을 입힌 작업과 드로잉 벽, 종이에 그린 회화 등 작품 30여 점도 전시장에 걸렸다. 작가가 대부분 올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중 아크릴판 5장을 잇대어 장을 모두 포개야 하나의 형체가 완성되는 작품이 시선을 끈다. 첫 장부터 끝 장까지 하나라도 빠지면 형체가 다르게 표현되는 작품이다.

전시 주제는 '일상'이다. '켡'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박 작가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고자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 박 작가는 "자동으로 돌아가는 플립북의 모습은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플립북 기법을 전시에 활용하게 됐다"며 "파인 땡큐 앤 유는 '안녕하니'라는 물음이 될 수도 있고, '안녕하다'는 답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많이 느끼게 됐는데, 나의 작업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김해서부문화센터 1층 스페이스 가율에서 볼 수 있다. 내년 2월 28일까지. 월요일·공휴일 휴관. 김해서부문화센터(055-340-7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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