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배달, 생존을 위한 필수 노동으로
거리 두기 시대의 역설 '공존해야 산다'

'어떻게든 겨우겨우 살아간다.' 몇 년 전 창원의 한 카페에서 이 글귀를 봤을 때 느낀 희열이 지금도 생생하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철학적인 고민을 하기 전에 살아있는 존재, 실존하는 지금 이 순간을 버티는 힘이 느껴졌다.

연초에 시작된 코로나19로 몸 사리며 보낸 한 해였다.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상식이었고, 상식 밖 행동은 비판을 받았다. 감염병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구나 감염될 수 있기에 서로에게 백신이 되고자 했다. 누가 확진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코로나가 세운 '잠시 멈춤'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느라 몸부림을 치고 있다. 사람들은 옷이나 생필품·과일을 사려고 가게를 찾는 대신 온라인으로 주문한다. 여전히 '먹방'은 대세이고, 사람들은 음식을 포장·배달주문해 끝없이 허기를 채운다.

그 과정에 택배·배달노동자가 있다. 그들을 '플랫폼 노동자'로 부른다. 휴대전화 일상화 등 정보통신기술 발전으로 등장한 플랫폼 노동은 코로나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노동 형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과연 그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있을까? 1997년도에 나온 광고 중에 "짜장면 시키신 분~!" 하면서 바다 한가운데서 철가방을 들고 소리치는 장면이 있었다. 어디서나 잘 터지는 휴대전화라는 콘셉트로 찍은 이 광고는 대박을 쳤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광고를 재해석한다면, 배를 타고 바다까지 배달한 노동의 가치는 얼마로 환산할 수 있을까?

택배·배달을 공짜 서비스로 여기는 시대는 지났다. 택배·배달노동자에게 지급되는 배송·수수료는 그들의 임금이다. 자영업자로 분류돼 기형적인 임금체계에 기계처럼 혹사당하는 그들의 현실을 더는 외면하기 어려워졌다. 코로나 시대에 플랫폼 노동은 모두의 생존을 위한 필수노동이 되고 있지 않나. 대행업체에 일부 떼고 남은 배송·수수료로 웬만한 임금노동자 한 달 치 월급에 맞추려면 그들은 뛰고 또 뛰어야 한다. 과로로 쓰러지고, 도로에서 난폭운전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들은 겨우 버티고 있다. 그들이 트럭을, 오토바이를 멈춰 세운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지난해 기준 전국 노동조합 조직률이 12.5%로 집계됐다. 최근 10년간 최고치라고 하지만, 조직률 20%를 웃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겨우다.

택배·배달노동자들이 버틸 수 있는 힘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는 코로나 시대,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혼자 힘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같이 살려면 조직된 힘이 필요했다. 코로나 방역도, 목숨 잃는 노동자가 없는 세상도 '공존'에서 답을 찾을 때다. 올 한 해 코로나와 겨우겨우 살아냈다. 내년에도 잘 버텨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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