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절이 드라마가 되는 날이 오기를
힘들어도 서로 안아주는 모습 가득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우리 사회가 변곡점을 지나는 해를 중심으로 소소한 일상을 그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첫 화인 1997년은 설명할 필요 없이 'IMF체제'라는 국가 위기 상황을 거치며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줬다. 이어 1994년은 수학능력시험을 처음 도입한 해다. 이전 학력고사 세대와 구분하는 동시에 아날로그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시대로 진입하는 사회상을 그려냈다. 1988년은 '서울올림픽'으로 상징되는 눈부신 성장 속에 이른바 '세계 표준'으로 우리 사회가 빠르게 편입되는 모습을 곳곳에서 드러냈다.

이 드라마가 보여준 미덕은 일상을 뒤흔들 만큼 큰 변화 속에서 사회적 가치를 소리 내 외치기보다 평범한 소시민 삶을 통해 긍정의 힘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달리 보면 도도한 시대적 변화에 몸을 내맡긴 힘 없는 이들이 서로 기댄 채 희망 하나만을 붙잡고 살아남은 기록이기도 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을 떠올리지만 올해는 정말 과거와 다른 연말을 맞고 있다. 아무리 어려움이 많았던 해라도 연말이면 사랑하는 이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새해 희망을 이야기하던 풍경도 사라졌다.

"더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곱씹다 문득 이 드라마를 떠올린 것은 긍정의 힘으로 다사다난한 우리 삶을 보듬었던 미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약 앞으로 <응답하라 2020>을 제작한다면 그 무대는 손이 큰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이었으면 좋겠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도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넉넉한 인심이 넘치는 그런 식당 말이다.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식당 사정이 어려워지면 자발적으로 선결제를 하는 단골손님과 임대료를 깎아주는 건물주도 등장할 것이다. 식당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학생은 의대나 간호학과에 다니다 어려운 의료 현장에 자원봉사자로 달려가는 장면도 넣어줬으면 좋겠다. 확진자가 늘어갈수록 혼란스러운 상황도 꾸밈없이 나타나겠지만 비난하기보다 서로 감싸 안아주는 따뜻한 모습 역시 드라마 곳곳에 다양한 장면으로 표현해주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거릴 걷고 친굴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주던 것',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어려운 시기를 우리가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담담하게 그려갔으면 좋겠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2020'이라는 숫자에 붉은색으로 × 표시를 한 새로운 12월 표지를 공개했다. 아래에는 '역대 최악의 해'라는 문구를 넣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결국 답답한 마스크를 벗고 환하게 웃는 그날이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놓고 싶지 않다. 훗날 2020년을 그려낸 드라마를 보며 모두 울고 웃는 행복한 상상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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