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날아든 슬픈 기별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 여운

9월 10일 김희준 시인의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문학동네)이 출간됐다. 시인은 지난 7월 진주시 내동면 빗길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시집 출간일은 49재를 지내는 날이었고, 시인의 26번째 생일이었다. 그의 첫 시집이 유고 시집이었다.

"빌어먹을, 하루만 줘" ('홀로그램 바나나' 중에서)

시인은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여고를 졸업했다. 고등학생 시절 시를 쓰며 64번이나 상을 받고 경상대 국어국문학과에 문학 특기생으로 들어갔다. 졸업 후 같은 과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23살이던 2017년 <시인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그해 <시산맥>에서 주는 문학상을 받았다. 문단에서는 아주 예민하고 언어감각과 폭넓은 상상력을 지닌 젊은 시인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올해는 석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글을 모르는 당신에게서 편지가 왔다/ 흙이 핥아주는 방향으로 순한 우표가 붙어 있었다/ 숨소리가 행간을 바꾸어도/ 정갈한 여백은 맑아서 읽어낼 수 없었다/ 문장의 쉼표마다 소나기가 쏟아졌다" ('오후를 펼치는 태양의 책갈피' 중에서)

잔인한 지난여름 이후 인터넷으로 김희준 시인을 검색하면 이름 앞에는 이제 고(故)라는 말이, 뒤에는 '1994~2020'이란 생몰년이 붙는다. 숫자의 간격이 짧아 슬프다. 아마 올해 도내 문단에서 벌어진 가장 비극적인 변화일 것이다.

얼마 전 웹진 시인광장이 올해의 좋은시상 수상작으로 김희준 시인의 '제페토의 숲'을 선정했다.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에 담긴 작품이다.

"올리브 동산으로 가자.// 구름이 행선지를 알려줄 거야" ('환상통을 앓는 행성과 자발적으로 태어나는 다이달로스의 아이들' 중에서)

시인은 올리브 동산으로 돌아갔지만, 시인이 남긴 긴 여운은 두고두고 지상에 흔적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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