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영상으로 흥미 돋우고
안장·갑옷 등 800점 넘는 유물 선봬
고대 장비·문화 변모 과정 오롯이

'철의 왕국' 가야에 사는 자식 없는 노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매일같이 산을 탔다. 산에 오를 때마다 영험하다고 소문난 '말바위'에 자식을 내려달라고 빌었다. 이들의 꿈이 이뤄진 건 이듬해 경오년 백마의 해였다. 그해 노부부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얻었다. 열두 해가 지나 다시 말의 해가 돌아오자, 마구간에선 흰 수말이 태어났다. 말의 해에 태어난 아이와 백마는 함께 성장했다. 어린 소년이 쑥쑥 자라 청년으로 성장하는 동안 백마는 젖을 떼고, 등에 사람을 태워 달리는 법을 익혔다. 가야에서 전쟁이 일어나 전쟁에 출정하게 된 청년 곁에는 '말 갑옷'으로 무장하고 가야의 깃발을 단 백마가 있었다. 적진을 향해 들판을 박차고 나갈 때도, 군사들을 호령할 때도, 적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적장을 제압할 때도 둘은 언제나 함께였다.

이들이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동안 세월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나이가 든 백마는 제 할 몫을 다했다는 듯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백마의 주인은 평생을 함께한 말의 죽음을 슬퍼했다. 백마의 몸에 장식용 '말갖춤'(말을 부리는 데 사용되는 각종 장구)을 하나하나 얹어준 뒤 예를 다한 장례를 치러줬다. 죽은 백마의 영혼은 말의 별로 돌아갔고, 먼 훗날 주인도 저승의 강을 건너 말의 별로 갔다. 그 별에서는 주인을 기다리는 수많은 말이 있었다. 주인은 자신의 백마를 단번에 찾지 못했다. 낙심한 채로 발길을 돌리려던 그때, 익숙한 방울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본 곳에는 그가 소년 시절 달아주었던 '말방울'을 단 백마가 있었다. 둘은 영혼으로 재회했다. 이후 끝나지 않는 은하수 길을 끝없이 달려 나갔다(에필로그 '가야인과 말의 일생' 중).

▲ 가야시대 말갖춤 재현물./국립김해박물관
▲ 가야시대 말갖춤 재현물./국립김해박물관

이 내용은 지난 10월 27일부터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국립김해박물관 기획전시실에 차려진 특별전 '말을 탄 가야'(내년 2월 14일까지)에 나온 애니메이션 영상 기획물 줄거리다. 전시실 출구 쪽에서 만나게 되는 4분 15초짜리 영상에선 어린 소년에서 백발노인이 되기까지 평생을 함께한 가야인과 백마 이야기가 등장한다. 기획전시실 안쪽에 채워진 유물들을 모두 둘러보고 난 뒤에야 전시장 밖으로 나가기 전에 감상할 수 있는 영상물인데, 말과 평생을 함께하는 가야인의 삶과 죽어서도 말과 함께하는 그들의 일대기가 애잔하게 그려졌다. 지금과 완전히 딴판인 옛날 옛적의 시공간을 보여준다.

실제로 가야인들은 말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일상생활에선 짐을 나르거나 이동하는 수단으로 말을 부렸다. 지배자들에겐 위세를 뽐내는 대상으로 말이 활용됐다. 뛰어난 기동성과 힘을 지닌 말을 통해 자신의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전장에도 같이 나갔다. 제사에서는 숭고한 희생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영상에서 언급되는 말 갑옷과 말방울, 장식용 말갖춤 등은 김해 봉황동 유적과 경주 덕천리 유적, 부산 동래 낙민동 패총, 창원 석동유적 등에서 출토된 유물들로 화면 밖에 차려졌다. 말갖춤으로 보는 가야문화가 이번 전시 주제인데, 말방울, 말 갑옷 등 800여 점이 넘는 유물이 전시장에 나왔다. 실제 가야 사람들이 말에게 입혀줬던 말 투구와 몸통 갑옷, 말안장, 재갈을 비롯해 금관가야와 아라가야 등 시대별 말갖춤 재현물 등이 소개된다. 말을 탄 사람 모양이 돋보이는 삼국시대 토기와 고대 여러 유적에서 출토된 말뼈, 말 모양 토우, 말 무늬 토기 등도 같이 내놨다.

▲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말 투구와 머리 뼈. /국립김해박물관
▲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말 투구와 머리 뼈. /국립김해박물관
▲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머리 뼈. /국립김해박물관
▲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머리 뼈. /국립김해박물관

특별전은 고대 말의 모습과 가야 말갖춤의 흐름, 말갖춤으로 보는 가야문화 순으로 꾸며졌다. 이번 전시에선 시대별 말갖춤의 특징과 발달 과정, 당시 말 문화와 말의 역할을 추정해볼 수 있는 유물들이 나타난다. 말갖춤은 쓰임새에 따라 말을 부리기 위한 제어용으로, 또 기수가 말에 안전하게 올라앉기 위한 안정용으로 사용됐다. 때로는 말 장식용, 말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용으로도 쓰였다. 가야의 말이 의례와 희생의 상징이자 위엄과 권위의 상징물로 활용됐다는 점이 전시장 안에 드러난다.

영상 기획물이 차려진 주변 공간에는 말을 부리고 장식한 도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재현품이 나타난다. 시대별 장식용 말갖춤과 전쟁용 말갖춤을 말 모형에 입혀놨다. 말 머리 모형에 말투구를 씌우거나, 말안장을 찬 말들이 전시장 안을 나란히 차지하고 있다. 가야 주요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과 전문가들의 학술 토론 결과를 바탕으로 재현한 것들이다.

전시를 기획한 국립김해박물관 김혁중 학예사는 "말갖춤으로 가야문화를 알아보자는 게 이번 전시의 주제"라며 "가야 지역에서 나온 유물 전부를 가져와서 보여줄 순 없지만, 당시에는 말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야가 기록이 없어서 고구려나 백제, 신라보다 문화가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번 전시에 나온 유물들을 보면 역동적이고 수준이 높은 가야문화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다. 말 문화 전체를 통사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는 지금까진 열린 적이 없었던 만큼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가야문화를 자세하게 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별전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사전예약은 국립김해박물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국립김해박물관(055-320-6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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