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면회 가던 길 비보 들어…육군본부 사건 경위 수사 중
모친 "늘 밝고 가족사랑 애틋…중대장 반복된 괴롭힘 못 견뎌"

'9월 ○○일. 요 며칠 군대에 있는 석한이가 보고 싶다. 목소리는 자주 듣지만 왠지 얼굴을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아들이 코로나19 때문에 오지 말라고 한다. 직장 일도 걱정이 되니 상황이 좀 나아지면 가기로 했다.'

'10월 ○○일. 아들이 다리가 아픈데 병원을 못 가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군에서 코로나19를 이유로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번에도 아프다던 그 다리인가보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마음이 아프다.'

'11월 23일. 석한이가 아침부터 전화를 안 받는다. 이틀 전에도 통화를 했는데. 부대에 연락하니 숙소에 잘 있다고 한다. 나한테 전화하라고 전달했다는데 감감무소식이다. 내일 하루 휴가를 쓰기로 했다.'

'11월 24일. 오전 4시 반에 퇴근한 큰아들을 데리고 창원에서 강원도 화천으로 출발했다. 드디어 석한이를 본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데 오전 7시 반께 경북 영주쯤 갔는데 중대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석환이가 세상을 떠났으니 국군 춘천병원으로 오라고 한다.'

고 김석한(22) 하사 어머니 백금숙(50) 씨는 군대에서 아들이 사망했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기억을 더듬어 일지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휴가가 밀려 5개월 만에 만난 아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에게 돌아왔다. 지난 4일 창원시 성산구에 있는 김 하사의 집에서 만난 어머니 백 씨는 "지금도 아들이 군대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예삐' 아들 = 김 하사는 3살 위인 친형을 따라 이른 나이에 입대해 병사 전역을 앞둔 2018년 하사관이 됐다. 단기 하사관을 거쳐 장기 하사관이 된 그는 강원도 화천에 있는 육군 7사단에서 근무했다.

백 씨는 코로나19가 주춤했던 지난 6월 휴가를 나온 김 하사를 만난 날이 아직 생생하다.

"어릴 적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흥 많은 개구쟁이였어요. 그때도 코로나19 때문에 사람 많은 곳에는 가지 못하니 노래방 기계와 조명을 가져와 가족들끼리 집에서 놀았어요. 그날 석한이가 불렀던 노래가 '찐이야'인데 녹음해뒀던 걸 지금 제 휴대전화 벨소리로 쓰고 있어요."

백 씨 휴대전화에는 아들 이름이 '예삐'로 저장돼 있다. 김 하사의 태명이다. 얼굴도 마음도 예쁜 아들이었다. 초등학생 때 선생님 추천으로 사진 모델도 경험했다. 여행 가서 맛있는 걸 보면 부모에게 사다주는 살가운 아들이었다. 군대에서 생사를 고민하던 순간에도 가족들에게 내색 한 번 안 했다. 백 씨는 그런 아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24일 석한이를 만나러 가기 전날 이런저런 준비를 했는데, 그 준비가 장례 준비가 될 줄은 몰랐어요. 더 일찍 만나러 가지 못한 게 한스럽죠. '괜찮다'는 아들 말을 믿지 말고 생각났을 때 가볼걸. 아들은 군대 안에서 그렇게 힘든데 나만 따뜻한 밥 먹고 하하호호 웃으며 지냈어요."

▲ 창원시 성산구에 있는 고 김석한 하사 방 모습. /김해수 기자
▲ 창원시 성산구에 있는 고 김석한 하사 방 모습. /김해수 기자

◇유서 =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나니 군 관계자들이 유품을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아들이 생전 좋아했던 피규어· 짱구 인형·향수·운동화, 그리고 아들이 입은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정복 등이 들어 있었다.

백 씨는 그제야 유서가 떠올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서 미처 보지 못했던 유서에는 가족들에게 그동안 말썽부린 일, 먼저 먼 길을 떠나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사랑한다, 보고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 사이로 한 문장이 들어왔다. '매번 꼬투리 잡고 힘들게 하는 사람.'

백 씨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아들과 친한 친구에게 연락을 했더니 한 사람을 지목하며 "중대장이 괴롭혀 힘들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말했다. 백 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들의 친구는 '중대장이 사람이 많은 회식 자리에서 공개 사과를 한 적도 있었지만 그날뿐이었고 괴롭힘은 멈추지 않아 괴로워했다'고 했다.

백 씨는 아들과 군대에서 가깝게 지냈고 장례식에도 찾아왔다는 선임에게도 연락했다. 그 역시 같은 사람을 언급하며 '하사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하사가 군 생활을 정말 잘했다'고 전했다.

"오죽 힘들었으면 좋아하던 군인 일을 뒤로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손으로 죽여야만 살인은 아니잖아요. 아들이 편히 눈감을 수 있도록 수사가 명백하게 이뤄지고 죄지은 사람이 벌을 받도록 할 겁니다. 엄마잖아요. 엄마는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진실 = 백 씨는 아들을 위해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고 다짐했다. 석한 씨처럼 꽃다운 나이에 생을 저버리는 또 다른 아들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예고 없이 훌쩍 떠난 아들에게 못다 한 말은 뭘까.

"유서 마지막에 '우리 가족 천국, 지옥 가서도 보고 싶다'는 말이 적혀 있는데 저도 너무너무 보고 싶다고. 정말정말 보고 싶고 미안하다고. 그 대답 전하고 싶어요."

현재 육군본부 헌병대가 장례 이후 유족 측이 제기한 의혹 등 전반적인 사건 경위를 수사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조사 중인 내용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면서도 "통상 2~3개월가량 걸리고, 결론이 나면 결과를 유족들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답했다.

군 사망진상규명위원회 조사2과장을 지낸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 소장은 "과거에는 구타와 같은 물리적인 폭행이 많았지만 지금은 정신적인 괴롭힘이 주요 사망 원인"이라면서 "조사에서 신체 부검뿐 아니라 심리적 부검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20대 초중반 군인들이 군대에만 갇혀 있으면 스트레스가 높아져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군대 특수성이 있지만 그와 별개로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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