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술의 핵심' 비메모리 시장 치열
한국 점유율 끌어올릴 전략 수립 시급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급격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올해 7월 아날로그디바이스(ADI)가 자동차 서버용 반도체 기업인 맥심인터크레이티드를 210억 달러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자율주행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최강자인 엔비디아가 모바일기기응용프로세서(AP) 강자인 영국 ARM을 400억 달러로 인수하고 PC용 중앙연산장치(CPU) 및 그래픽처리장치분야에서 인텔, 엔비디아와 각축을 벌이고 있는 AMD가 IT제품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일링스를 350억 달러에 사들인다고 발표했다. 자일링스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논리소자와 내부회로가 포함되어 있는 FPGA 반도체 소자 기술 글로벌 1위로 이번 인수·합병으로 AMD는 자율주행은 물론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등에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비메모리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글로벌기업들 간의 천문학적 비용의 인수·합병을 통한 합종연횡은 예사롭지만은 않다.

세계 반도체시장은 2019년 기준 약 4283억 달러로 70%가 비메모리, 30%가 메모리 시장이다. 메모리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고 저장된 정보를 읽거나 수정할 수 있는데 전원이 끊기면 정보가 사라지는 D램과 전원이 끊겨도 정보를 보존하는 플래시메모리가 있다. 반면에 비메모리반도체는 논리와 연산, 제어, 정보처리 등 각종 기능을 수행하며 하나의 칩에 통합되어 있어서 시스템반도체라고도 불린다. 대표적인 비메모리반도체로는 인텔이 압도적으로 1위인 PC용 중앙연산장치, 퀄컴이 세계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는 스마트폰, 태블릿용 PC의 두뇌에 해당하는 응용프로세서(AP)가 있다. 또한 다양한 IT융합 제품에서 정보를 분석해 외부환경을 인식하고 작업을 수행하는 이미지센서 및 그래픽처리장치, 디지털신호처리장치(DSP), 배터리 전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전력반도체 등 용도와 형태가 다양하다.

수요변화에 민감한 메모리반도체와는 달리 비메모리반도체는 고도의 기술력과 창의성을 요구하는 기술집약형 산업으로 수요변화에도 안정적이다. 작금에 불어 닥친 비메모리업계의 대규모 빅딜은 5G통신과 인공지능, 자율주행,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혁신기술에 비메모리반도체가 핵심을 담당하고 있고 관련 시장이 대폭 확대되는 가운데 주도권 확보를 위한 경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D램 시장의 72%, 낸드플래시 시장의 56% 등 세계시장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최강자다. 하지만 비메모리 분야에선 세계시장 점유율이 4% 정도에 그쳐 반도체 일등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삼성이 지난해 '반도체 비전 2030'을 내걸고 2030년까지 10년간 133조 원을 투입해 비메모리반도체 1위를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지만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고 진입장벽이 높아 성공가능성은 예단하기 어렵다.

비메모리는 K반도체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9월 말 현재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19.8%에 달할 정도로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고 4차 혁명 산업의 '쌀'임엔 틀림없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석학 제러미 리프킨은 올해 출간한 <글로벌 그린 뉴딜(The Green New Deal)> 보고서에서 세상은 '커뮤니케이션·모빌리티·에너지' 부문의 대전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이 시대엔 반도체산업, 특히 비메모리산업이 근간임은 분명해 보인다.

글로벌 반도체산업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K반도체가 나아갈 방향을 시급히 정립할 때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