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 중 가장 엄격한 '비건'
옷·화장품부터 꿀·돌고래쇼 등
동물 착취하는 상품 모두 거부
살처분-전염병-환경오염 연결
지속 가능 소비 실천 문화 확산

코로나 덕분에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관심을 더 기울이게 된 것이 있다. 기후 변화 같은 환경 문제가 그 한 가지고, 우리가 동물을 다루는 방식을 성찰해보는 일이 또 다른 한 가지다. 두 번째는 동물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후 변화와 동물권은 사실 서로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환경 문제와 관련해서 요즘 새로운 생활 경향으로 뜨는 게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다. 쓰레기 배출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운동이다. 그리고 동물권과 관련해서 '비건(Vegan)'이란 채식주의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 부산에서 활동하는 채식 요리사이자 음악가인 나까 씨가 무하유 행사를 위해 준비한 비건 도시락. 식물성 재료로 만든 비엔나, 가지 초밥 등이 색다르면서도 맛있다./이서후 기자 <br /><br />
▲ 부산에서 활동하는 채식 요리사이자 음악가인 나까 씨가 무하유 행사를 위해 준비한 비건 도시락. 식물성 재료로 만든 비엔나, 가지 초밥 등이 색다르면서도 맛있다./이서후 기자
 

◇비건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채식주의에는 굉장히 다양한 단계가 있다. 유제품(우유), 달걀, 생선까지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안(채식주의자), 페스코에서 생선을 금하고 닭고기 같은 가금류까지만 먹는 폴로 베지테리안, 유제품까지만 먹는 락토 베지테리안, 계란까지만 먹는 오브 베지테리안 등이 있다. 또 채식주의를 지향하되 자신만의 기준으로 육류를 먹기도 하는 플렉시테리안도 있다.

비건은 채식주의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다. 모든 동물성 음식은 물론 동물성 원료가 포함된 옷, 화장품 같은 상품도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단순히 식습관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동물에 행하는 모든 형태의 착취, 학대를 반대한다는 뜻을 담은 사회 운동에 가깝다.

우리나라에 비건을 소개한 책 중 대표적인 게 김한민 작가가 쓴 <아무튼, 비건>(위고, 2018년)이다. 이 책을 읽고 비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사람이 꽤 많다. 책에 소개된 비건의 개념부터 살펴보자.

"비건은 동물로 만든 제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사람이자 소비자운동이다. 고기는 물론, 치즈나 우유 같은 유제품, 달걀, 생선도 먹지 않으며, 음식 이외에도 가죽, 모피, 양모, 악어가죽, 상아 같은 제품도 사지 않는다. 좀 더 엄격하게는 꿀처럼 직접적인 동물성 제품은 아니지만, 동물을 착취해서 얻은 제품도 거부하며, 같은 의미에서 돌고래 쇼 같은 착취 상품도 거부한다.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게 음식이니, 엄격한 채식이라고 알고 있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김한민 작가는 굉장히 열성적인 동물권 보호 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은 공장식 축산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식용 가축들이 평생 좁은 우리에 갇혀 움직이지도 못하고 비참하게 살다 잔인하게 도살된다는 내용은 이전 광우병 파동 때 상당 부분 알려진 것이다. 다만, 그때는 '어느 나라의 고기만 안 먹으면 되지' 이 정도였다면 이번 코로나는 공장식 축산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도 '동물해방공동체 직접행동 DxE - Korea'나 '서울 애니멀 세이브(Seoul Animal Save)'처럼 동물권 보호 활동을 하는 단체가 있다. 특히 서울 애니멀 세이브에서 벌이는 '비질(Vigil)' 활동이 인상적이다. 도축장을 찾아 도살되는 동물들의 두려움을 위로하며 죽음을 애도하는 실천 행위다.

비건은 직접 이런 활동을 벌이지 못하더라도 이들의 생각에 공감하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 창원 복합공간 무하유서 지난달 진행한 비건 모임. /이서후 기자
▲ 창원 복합공간 무하유서 지난달 진행한 비건 모임. /이서후 기자

◇어렵지만, 더 큰 나를 위한 행동

우리 지역에도 이 비건을 실천하거나 실천하려고 애쓰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창원 사파동에 있는 무하유란 복합공간에서는 지난 한 달 동안 주말마다 '비건 친구 만나기'를 주제로, 강연, 공연과 음식 체험이 이어졌는데, 코로나로 참여 인원을 제한해도 예약이 금방 채워질 정도로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행사에서 매주 비건을 실천하는 예술가 5명이 각각 참석자들과 각자 비건을 시작한 이유와 실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참석자 중에는 평소 집에서는 철저히 비건 생활을 하지만, 밖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실천한다는 이가 많았다. 이런 이들은 자신을 '비건 지향'이라고 소개한다. 엄격하게 지키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지키려고 애쓴다는 뜻이겠다.

이처럼 비건을 결심했다고 해도 이걸 실천하기는 진짜로 어렵다. 사람들 사이에서 비건을 선언하는 순간, 당장 사회생활에서 굉장한 불편이 시작된다. 직장 동료와 아니면 친구들과 식당에 가면 메뉴 중에 먹을 게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비건을 고집하면 뭔가 까다로운 사람이 되고 만다. 심지어 가족 간 다툼이 생길 수도 있다. 특히 아이를 키울 때도 비건을 고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가면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아무튼, 비건>에서 김한민 작가는 한국에서 비건을 실천하는 것을 도 닦는 것에 비유한다.

"비건만큼 '커밍아웃'을 했을 때 실제 생활에 파급력이 큰 경우도 드물다. 최소한 하루에 세 번, 끼니마다 스스로 선택의 순간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직접 해보면 주위의 관심 혹은 '감시'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늘어남을 체감할 것이다. 커밍아웃을 한 동성연애자들도 끼니마다 성 정체성이 화제에 오르내리진 않는다. 단체 식문화가 발달한 한국은 그 폐해가 더 심하다."

하지만, 제로 웨이스트와 비건은 세계적으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심지어 서양에서는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했을 정도다. 곳곳에 포장지 없는 가게가 늘고 있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활용한 의류 상품이 유행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스트푸드 체인 기업들이 식물성 육류 패티를 햄버거에 넣으려고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포장지 없는 가게가 몇 곳 생겼고, 채식이 아닌 정확하게 비건을 지향하는 식당도 조금씩 늘고 있다.

기본적으로 비건주의에는 '지구 위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는 감수성이 바탕에 깔렸다. 예컨대 동물 학대, 물과 토양의 오염, 탄소 배출로 말미암은 기후 위기, 숲과 밀림의 파괴, 고기를 빨리 얻기 위한 성장 호르몬과 항생제, 전염병과 살처분 그리고 코로나 같은 인수공통전염병이 유기적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비건은 나보다 더 큰 나, 즉 지구를 위한 실천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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