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과 공존보다 여전히 양적 성장 치중
죽임의 일터 끝내고 지속 가능한 경제로

불에 타서, 치이고 끼여서, 떨어지고 잘려, 갇히고 질식해서, 독성물질과 과로에 병들어 죽는다. "다녀올게"라며 일터로 나갔다가 안녕히 다녀오지 못한다. 2001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산업재해 사망 2323명, 매일 6~7명이 죽는 산재 공화국의 현실이다.

우리가 쓰는 전기, 배달온 택배, 생필품, 살아가는 집, 타고 다니는 차와 길을 만드는 과정에서 죽어 나간다. 우리는 숱한 죽음으로 만들어진 생산물로 목숨을 유지한다고 말하면 과할까.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산재사망 1위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화두다. '살인기업'에 징벌적 처벌을 하자는 게 핵심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을 보면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를 숨지게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2~3년 이상 징역, 5억 원 이상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이렇게 센 법을 제정하려는 것은 그간 많은 죽음에 처벌이 약했고,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아서다. 2009년 이후 2019년 6월까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6144건의 1심 재판 결과를 보면 금고·징역형은 0.57%(35건). 대부분 집행유예(13.4%)와 벌금형(67.3%), 벌금액은 몇백만 원이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반대의견을 냈다. 건설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가장 잦다. 안전조치를 철저히 하면 떨어짐 사고를 줄일 수 있다. 그런데 건설단체는 아파트 현장에 많을 땐 하루에 1000~2000명을 투입하는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개별 현장의 안전을 직접 챙기는 것은 현실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언제까지 죽음을 딛고 부를 쌓을 것인가. 그렇게 창출한 경제성장이 생명을 존중하는 세상, 공동체에 얼마나 득이 되겠는가. 여전히 안전과 공존보다는 양적 성장에 쏠려 있다.

대표적인 경제지표로 삼는 국내총생산(GDP·Gross Domestic Product)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를 포괄하는 지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930~1940년 대공황과 2차 대전 과정에 미국과 영국에서 만들어진 GDP는 낡았다. 코로나 세태에서 더 그렇다.

고도성장 속 양극화와 불평등 같은 부작용은 GDP에 반영되지 않는다. 집값과 임대료가 오르면 주택 소유자들의 자산가치와 임대수입 증가만 성장으로 잡힐 뿐 주거 불안정 문제는 잡히지 않는다. 생산활동으로 탄소를 배출하면서 생긴 환경 파괴와 기후위기도 마찬가지다.

다음세대 정책실험실 'LAB2050'은 최근 발표한 <GDP를 넘어서 :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의 시대, 진정한 가치를 찾아서> 보고서에서 이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산재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터에서 산재가 끊이지 않아도 기업의 이익과 번영을 중시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지속 가능한 경제가 중요한 시대다. 근본은 공존과 생명이다. 죽임의 일터를 끝내자. 이번에는.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