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자 확대 영향 인식 변화
최근 노후대책 선호도 1위
추후납부제도 제한 추진
시행 전 적극 활용했으면

서재를 정리하다 <국민연금 합법적으로 안내는 법> 책이 눈에 띄었다. 2004년 발간이니 30대 중반에 산 책이다. 도대체 2004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자극적인 제목이 붙은 책을 샀던 것일까?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당시 한 누리꾼이 인터넷에 올린 '국민연금 8대 비밀'이라는 글 때문이었던 것 같다. 8대 비밀은 '국민연금은 부부가 가입하면 한쪽은 못 받는다', '기금 고갈로 연금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내용을 접하면서 광분했고 어떻게 해서라도 국민연금을 내지 않으려고 이 책을 샀던 것이다. 하지만 직장인이 국민연금을 합법적으로 안 내는 방법이라는 게 고작 '외국 이민' 같은 비현실적인 내용임을 알고 절망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까지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쌓인 건 2003년에 발표된 '제1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영향이 컸다. 재정계산은 연금 건전성 평가와 기금운용 정책을 수립하려고 1998년 도입한 제도로 5년마다 한다. 그 첫 번째 결과가 2003년에 나왔고 기금이 2047년이면 완전히 고갈될 것이라고 했다. 그 때문에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불신은 커져 그해 7월 국민연금공단이 진행한 '가장 믿을 만한 노후대책 조사'에서 국민연금은 꼴찌를 했다. 1위는 '저축'으로 34.4%였던 반면 국민연금은 겨우 2.8%에 불과해 12배나 차이가 났다.

그랬던 국민연금이 최근 조사한 노후준비방법에서 1위를 차지했다. 통계청의 '2019년 사회조사'에서 응답자의 55.2%가 국민연금을 꼽았다. 더 놀라운 것은 29세 미만의 67%가 국민연금을 1순위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과연 1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인식이 이렇게 바뀌게 된 걸까? 게다가 2003년 1차 재정계산 결과 기금 고갈까지 남은 기간이 44년이었다면 2018년 5차 재정계산 결과 기금 고갈은 2057년으로 남은 기간이 39년으로 5년이나 더 빨라졌는데도 말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국민연금 수급자가 많아진 것 때문은 아닐까? 2003년 105만 명이었던 연금 수급자가 올 상반기 514만 명으로 5배나 늘었다. 월 100만 원 이상 수급자도 30만 명을 넘어서면서 노후생활에 국민연금만 한 것이 없다는 인식이 점차 퍼진 것 같다.

그런데 찬물을 끼얹는 일이 최근 일어났다. 바로 국민연금 추후납부제도의 납부기간을 10년 미만으로 제한하는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소위원회에서 의결된 것이다. 추후납부제도는 전업주부나 실직자같이 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해 과거 보험료를 못 낸 기간을 되살릴 수 있도록 한 '좋은 제도'다. 특히 전업주부가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이제 겨우 5년이다. 아직 홍보가 부족해 활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데도 말이다.

고소득층의 재테크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납부기간이 아니라 납부금액 제한으로도 충분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 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아니다. 시행일까지 시간은 남았다. 더 많은 이들이 추후납부제도를 알고 활용해 노후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

이제 <국민연금 합법적으로 더 내는 법>이라는 제목을 단 책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