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번영회 관리비 감축 압박
1명이 3~4곳 상가 청소 맡기도
휴게실 없고 성폭력 위험 노출
산업보건 조사서 '작업장 위험'
악취·세균 노출…환기 취약구조

'창원지역 중소상가 청소·경비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는 그간 공공기관과 대학, 아파트를 중심으로 이어지던 연구가 도심 상가로 확장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소외된 현장을 살피고 분석했다는 것만으로도 지역사회 소중한 결실이다. 특히 창원지역은 곳곳에 상가 문화가 형성돼 있고, 이는 시민 일상과 맞닿아 있다. 이번 실태조사에 참여한 이들을 만나보고 보고서를 다시 들여다봤다.

◇차별·착취 고리 = 여성 청소노동자는 1970~80년대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이미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경험한 이들도 있었다. 가내 부업, 산모 도우미나 아이 돌봄, 마트와 농산물 도매시장 등을 전전했기에 그들의 고용은 늘 불안했고 업무 강도는 높았다. 경비원은 창원국가산단, 진해 해군 등에서 정년퇴직한 이들이 택하는 '생애 마지막 일자리'였다.

이들은 겹겹이 쌓인 차별과 노동착취를 겪고 있다. 대부분 용역·위탁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형태로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더구나 노조 조직률은 낮고 각종 산업재해 위험이 큰 5인 미만 사업장이 많다. 조사단(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심리상담활동가 모임 심심통통·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은 "청소 용역 노동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계층인 고령의 저학력 여성들로 구성돼 연령, 학력, 성이라는 중층적 차별에 직업적 차별까지 겪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상가 30곳을 살펴본 조사단은 청소·경비노동자가 쉬고 씻을 공간도 변변치 못한 실정이라고 전했다. 조사단은 "상가 번영회 총회 때만 되면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안건으로 상정된다"며 "이때 노동자 성실성이 평가의 도마에 오른다. 이러한 일은 창원지역 상가에서 일상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창원지역 중소상가 청소·경비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참여한 조사단원들이 이야기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병훈 마창거제산추련 활동가(산업보건지도사), 송인옥 마창여노회 활동가, 이은주 마창거제산추련 상임활동가.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창원지역 중소상가 청소·경비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참여한 조사단원들이 이야기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병훈 마창거제산추련 활동가(산업보건지도사), 송인옥 마창여노회 활동가, 이은주 마창거제산추련 상임활동가.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강한 체념 = "강아지가 화장실에 와서 똥을 쌌거든요. 그때가 일요일이었던가. 노는 날인데도 전화가 왔더라고요. 밟고 다닌다고 빨리 좀 치우라고. 와서 청소했죠. 기분 나쁘지. 강아지 똥이 딱딱해서 누구라도 화장실에 휴지 가지고 버리면 돼요. 근데 기어코 오라 하더라고. 두말 안 했어요. 내가 할 일인가 싶어서." (61세 상가 청소노동자)

오래된 상가는 하루 2시간만 청소노동자를 쓰다 보니 1명이 일주일에 3~4개 상가를 돌면서 일하는 사례도 있었다. 휴식 공간과 탈의실을 여성과 남성이 함께 쓰는 곳도 있었다. 이은주 마창거제산추련 상임활동가는 "사람들이 떠난 오후 여자화장실 뒤편 눅눅한 공간에서 쉬던 노동자들이 나와 일하는 걸 보고 울컥했었다"며 "대부분 노동자가 '우리가 뭘 요구하겠느냐'며 체념이 강하고 스스로 최말단의 을로 여긴다. '간과 쓸개는 집에 두고 나와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동과 인간 존중이 있다면 장애인화장실이 필수인 것처럼 노동자 휴게실·샤워실 설치도 필수로 건축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상가에서 노동자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인옥 마창여노회 활동가는 "어떤 부당함이나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도 '이게 끝이니까 참아야지'라는 마음이 내면화돼 있었다"며 "생계형 노동자가 많았는데, 여성 노동자의 삶을 보면 반복적인 성폭력에 노출되기도 하고 이후 가사노동까지 쉼 없이 노동이 이어지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 창원시 한 상가 쓰레기 배출 장소. 배출 구분이 안 돼 있으면 청소노동자가 정리하는 데 상당한 힘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동욱 기자
▲ 창원시 한 상가 쓰레기 배출 장소. 배출 구분이 안 돼 있으면 청소노동자가 정리하는 데 상당한 힘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동욱 기자

◇작업환경 개선 제안 = 조사단은 상가 청소노동자의 육체적 강도를 평가하고자 심박수와 에너지 소비량, WBGT(복사열과 습도 등을 종합해 분석한 더위지수) 온도, 국제노동기구(ILO) 휴식 여유율 등을 따져봤다. 노동시간은 짧았지만, 노동밀도(일정한 시간 작업에 소요하는 노동량)가 높았다. 단시간에 해치워야 하는 일이 많다는 의미다. 60대 상가 청소노동자는 40대 제조업 남성 노동자와 비교해 심박수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조사에 함께한 김병훈 마창거제산추련 활동가(산업보건지도사)는 "다양한 평가 도구를 적용해봤는데 상가 청소 노동이 인간공학적으로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고령임을 반영하면 더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작업환경 개선은 관심을 두고 조금만 비용을 들이면 가능하다. 예를 들면 노동자들이 쪼그려앉아 변기를 닦는데, 불편한 자세인 데다 악취나 세균 등에도 노출된다. 이건 배관으로 전용 호스를 꽂으면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상가 30곳 중 지상 휴게실은 2곳에만 있었고, 대부분 지하나 화장실, 계단 아래에 있어 인간적인 최소한의 기준도 안 지켜졌다"며 "여름철 물로 작업하다 보면 땀이 배어 시원하게 씻고 쉴 수 있어야 하는 데 그런 공간이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사단은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해 △화장실 양변기 청소 호스·대걸레 탈수기·유리창 청소도구 비치 △100ℓ 대신 50ℓ 쓰레기봉투 사용 △재활용 분리배출 공간 구분 △중간중간 휴식(냉난방·환기 가능한 공간 확보) 등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화학물질 노출, 부유 세균·진균, 미세먼지, 휘발성 유기화합물, 악취 등에 관한 추가 조사 필요성도 언급했다. 청소노동자 조기 출근, 경비노동자 야간 근무 등도 피로를 가중하고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커 개선이 필요하다.

조사단은 "청소 업무를 가사활동 일부로 보는 인식 때문에 체계적인 인수인계 과정은 거의 없는 상태이고, 이는 전문적인 업무로 보지 않는 사회적 인식을 낳게 된다"며 "영역별 청소 방법을 포함해 도구와 세제, 소독약품 사용 등은 일정한 매뉴얼(안내서)이 필요하고 이를 공식화하는 것은 현장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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