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명 '악의 연대기, 그 후'전
3일까지 대안공간 로그캠프서
무서웠다. 얼굴에 굵직하게 남아있는 칼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이마부터 턱밑까지 곳곳에 흉터가 있었다. 찢어지고 꿰맨 듯한 상처들이 선명했다.
그런 얼굴을 한 것도 무서운데, 토끼처럼 이를 내밀고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저절로 시선과 고개가 바닥으로 내려갔다.
이것의 정체는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창원대 앞 대안공간 로그캠프에 나온 '처키'(Chucky) 외형을 가진 도자 작품이다.
지난 26일부터 열리고 있는 정소명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 '악의 연대기, 그 후'전에선 영화 <사탄의 인형>의 주인공 처키가 줄무늬 티셔츠와 청색 멜빵 바지를 입은 채 전시장 벽면 한구석을 지키고 있다. 정 작가의 개인전에서 만나게 되는 처키는 석고 캐스팅 기법(틀과 원형 등을 제작하는 방법)을 활용해 틀을 만든 뒤 색 안료를 입히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한쪽 손에 칼을 들고 있지 않지만, 칼이 없어도 어딘가에 칼을 숨기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작업이다. 처키 하면 떠오르는 옷차림과 표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악의 연대기, 그 후'전은 악당들을 모아놓은 작품 마당이다. 조소과 출신인 정 작가는 처키뿐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만화영화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같은 방법으로 제작해 로그캠프에 내놨다.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에 나오는 빅맘과 도플라밍고, 아론을 비롯해 영화 <어벤져스>의 타노스, <다크나이트>의 조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유바바, <해리포터>의 볼드모트 등이다. 각기 다른 작품 속 악당들이 검지 손가락 길이만 한 작은 크기부터 하박 정도되는 크기까지 여러 형태로 나왔다. 시중에 판매되는 피규어를 보는 것처럼 아기자기한 느낌이 돋보인다. 크고 작은 작품들이 신선한 구도를 만들어낸다.
정 작가는 "확장된 시야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다 보면 현실에서 마주하는 악당에 관한 감정이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현대 콘텐츠 속 악당들을 보면서 왜 그들이 악당이 된 것인지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3일까지. 로그캠프(010-5154-3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