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구심점으로 선택했던 프로야구단
챔피언 결실이 시민 자긍심 되고 있는가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진행되는 내내 상상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한국시리즈 7차전 중 네 게임은 창원NC파크에서 열렸을 거다. 1·2차전은 창원에서, 3·4·5차전은 서울에서, 마지막 6·7차전은 다시 창원에서 열리는 일정이었을 테니, 경기 내용과 결과가 이번과 똑같았다면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을 창원에서 맞이할 수 있었을 거다.

원종현이 최주환을 삼진으로 잡아내는 순간 경기장을 가득 채운 만원 관중은 일제히 목이 터져라 함성을 외쳤을 것이고, 곧이어 응원단 스피커에서 '다이노스여 일어나라'가 흘러나오자 모두 따라부르며 구단 깃발과 민트빛 응원타월을 흔들었을 테다. 한동안 경기장에서 들리지 않았던 '마산 스트리트여'가 울려퍼지는 순간 자칭 마산 아재들과 아지매들은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냈을지도 모르겠다(고척 경기장에서 실제 이 노래가 나왔다).

산호동은 어떻게 됐을까? 최소한 용마로는 교통이 통제되지 않았을까? 경기장에서 쏟아져나오는 응원단과 경기장 근처 펍에서 생중계를 지켜보던 팬들이 뒤섞이며 2002년 월드컵 때를 방불하는 신나는 거리 잔치를 경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리 일찍 잡아도 새벽 두세 시까지는 여기저기서 응원가를 외치는 응원단들로 떠들썩하지 않았을까? 가게 곳곳에서 '주인이 쏜다!' 같은 우승 기념 이벤트들이 범람하지 않았을까?

조금 더 시야를 넓혀 상상해 보자. 그날 밤 창동·오동동은 어땠을까? 합성동과 댓거리는 어땠을까? 창원 상남동은 어땠을까? 진해 충무동은? 다이노스 유니폼을 맞춰입은 응원단들이 주점 등에 함께 모여 생중계를 보며 응원했을까? 창원시는 주요 지점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길거리 응원을 지원했을까?

이튿날 열리는 축하 행사는 어느 장소에서 어떤 프로그램으로 진행됐을까? 카퍼레이드는 했을까? 시민들은 얼마나 모여들었을까? 상상의 범위가 경기장이 있는 산호동을 벗어나는 순간 자신감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비단 개인의 성향 탓일까?

2007년 인구 23만 명 규모의 일본 사가시에 있는 무명의 공립 사가기타고등학교 야구부가 명문사학 야구부를 모조리 물리치고 일본 고교야구선수권대회(일명 고시엔)에서 우승했을 때 사가시민 대부분이 거리로 나와 우승을 만끽했다. 일개 고교 야구부지만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했고, 환영식에는 수만 명이 참가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팀 중 하나인 레스터시티FC가 창단 132년 만인 2016년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했을 때 전체 33만 명의 시민 중 24만 명이 카퍼레이드와 축하행사에 참여했다. 같은 해 10월 미국 메이저리그의 시카고컵스가 염소의 저주를 풀고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됐을 때 시민 수백만 명이 거리를 메웠고, 시장은 이튿날을 공휴일로 선포했다.

창원시는 2010년 통합시 출범 직후 프로야구 제9구단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시민 통합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프로야구단을 선택했다. 10년이 지난 오늘, 이웃 도시는 38년 동안 한 번도 못해봤다는 통합 챔피언 타이틀을 품에 안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이 경사가 일부 야구팬이 아닌 모든 시민을 열광시키고 있을까? 사가시처럼, 레스터시티처럼, 시카고처럼, 스포츠의 성취가 시민의 자긍심이 되고 있을까?

혹시 부족하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코로나 없는 다음 우승을 제대로 즐기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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