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 대책 잇따라 나왔지만
지역·노조 유무별 시행 제각각
원청 책임 강제 방안 마련 촉구

올해 택배 노동자의 잇따른 과로사로 각 회사가 방지책을 내놓았지만, 현장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택배 노동자 업무는 평년 대비 30% 안팎으로 늘었다. 그럼에도 택배사들은 분류·배달 인력을 증원하지 않았다. 장시간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택배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일이 이어졌다. 도내에서는 지난 7월 CJ대한통운 김해터미널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숨졌고, 10월에는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생활고와 사내 부당함을 토로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잇따른 사망에 택배사는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국내 택배 물량의 50%를 처리하는 CJ대한통운은 지난 10월 △내년 1분기까지 분류지원 인력 4000명 단계적 투입 △산재보험 가입 △건강검진 시행 주기 1년 단축·검사 항목 추가 등을 약속했다. 한진택배는 심야 배송 중단과 분류작업 인력 1000명 투입, 롯데택배는 물량 조절제 도입과 분류작업 인력 1000명 투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현장에서는 이러한 재발 방지 대책을 체감할 수 없다고 했다.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회는 "(노동자 사망 사고 이후) 지점장은 12월까지 일을 하고 나서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며 "또 지점에서 고용한 하차 인력이 1명 추가됐으나, 그 외 달라진 건 없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로젠택배는 불공정 계약 문제를 포함한 종합적인 대책을 공식 발표하겠다고 했으나, 아직 이렇다 할 결과도 나오지 않고 있다. 지회는 "본사 차원에서 불공정 계약 일부를 수정하겠다며 계약서 지침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노동자에게 전달된 건 없고, 새로 계약을 맺지도 않았다"며 "흐지부지 넘기는 건 아닌가 우려된다"고 했다.

▲ 25일 오전 서울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과로사 대책 이행 점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25일 오전 서울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과로사 대책 이행 점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성욱 택배연대노조 경남지부장은 "CJ대한통운 측이 약속한 과로사 방지대책을 일부 시행하고 있기는 하나 턱없이 부족하다"며 "일부 분류인력이 투입되기는 했으나, 택배 기사 수에 비하면 여전히 모자란다. 택배 노동자의 과중한 업무는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황 지부장은 이어 "노동조합이 없는 곳은 애초 산재보험 가입이 원활하지 않았다. 산재보험에 가입했더라도 그 비용은 사측과 노동자가 반반 부담하는 일이 잦다"며 "분류인력 인건비 역시 기사들에게 전가하기도 해 과로사 방지책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택배사가 노동자에게 보험 가입을 명목으로 배송 수수료를 삭감하는 사례도 나왔다. 지난 25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CJ대한통운 한 대리점은 7월 산재보험 가입을 위해 택배기사 배송 수수료를 삭감했지만 현재까지 산재보험 가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삭감된 수수료는 건당 20원으로 월 16만 원에 해당하는데, 택배노동자가 부담하는 보험료가 2만 2000원가량임을 감안하면 14만 원 상당의 임금이 갈취 됐다는 게 대책위 설명이다.

다른 한 대리점에서는 추석 물량이 한창인 9~10월, 배송 일부를 동료에게 부탁한 택배기사가 해고를 당하는 일도 생겼다.

대책위는 "과로사 대책 이행 과정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대리점 갑질로 생기는 문제에 대해 원청이 책임지는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택배 노동자들은 △비대면 배달 공식화(분실 책임 전가 금지) △폭우·폭염 대책 마련 △산업안전 근로감독 시행 △산재보험 당연 가입·사업주 100% 부담 △택배 안전운임(수수료) 법제화 △추석 우편물 특별소통기간 집배원 택배물량 상한선 확정 등을 과로사 방지책으로 제시한 바 있다.

김대환 전국택배노조 부위원장은 "대책 시행에서 지역별 또는 노조 유무에 따라 차이가 크다"며 "현장에서는 '왜 우리는 안 해주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라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어 "택배 회사들은 단기적이고 면피성 대책을 내놓기보단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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