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어린이글쓰기큰잔치 스무 해를 갈무리하며 경남도민일보에서 책을 하나 엮었다. 어린이들이 쓴 소중한 글을 다 싣지는 못하였으나 20년의 흐름으로 어린이 삶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찬찬히 읽다 보면 아이들 글 속에 시대가 보이고 아이들의 소망도 보인다. 어른들의 못난 모습이 보여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올해 글쓰기큰잔치에서도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소망을 읽으며, 특히 일상이 소중해진 가운데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에 눈길이 갔다.

코로나 탓에 학교 수업도, 방과 후 수업도 차질을 빚은 터라 어린이들이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그러나 예년과 비슷한 편수의 글이 들어왔으며, 내용으로 볼 때는 오히려 단체로 숙제하듯이 쓴 글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억지스러운 글은 줄어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가족에 대한 글이 실제적이고 진솔하게 드러났다. 가족에 대한 피상적인 언급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로 장면을 이어가는 글이 재미를 주었다.

낮은 학년 으뜸으로 뽑은 '예쁜 우리 언니'는 혼자서 스스로 걸어본 적 없는 열한 살 언니와 동생의 대화가 따뜻하게 다가오는 글이다. 잔잔하게 서로 배려하는 자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도록 잘 살려 썼기 때문에 감동으로 다가온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언니가 부끄럽지 않다고 하는 말이 진솔하게 들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버금으로 뽑은 '새 밥'에서도 생명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여름마다 찾아오는 새들이 애써 키운 열매를 계속 따먹는데도, 가을에 귤이 다 익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 그 새들을 걱정한다. "귤이 다 익었"는데 "새들이 안"오니 한편으로 좋으면서도 "새들이 배고프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이 마음이다.

낮은 학년 버금으로 뽑은 글 '깜짝이야'는 사마귀와 눈이 마주쳤을 때의 상황을 잘 살려 썼다. 글의 제목을 그냥 '사마귀'라고 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살려 "깜짝이야"로 붙임으로써 글에 재미를 더했다. 어린이 자신도 깜짝 놀랐지만 사마귀도 깜짝 놀라 도망을 간다고 생각한 아이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상상하니 더 재미있다. '연필심 부러지는 소리' 역시 제목을 잘 붙였다. 밤늦게 공부할 땐 연필이라도 부러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 마음으로 읽으니 더 실감 나게 읽힌다. "똑" 연필이 떨어지자 "딱" 심이 부러졌고, 이어서 "싹" 공부할 마음이 사라졌다는 재미있는 표현 속에 아이 마음이 그대로 살아있다.

높은 학년 으뜸으로 뽑은 '심부름값 1000원'은 어른들 편의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집안 식구의 태도를 꼬집고 있다. 어린이 자신의 마음이나 상황은 헤아리지 않은 채 심부름을 시시때때로 시키면서 1,000원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어른들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내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알지도 못"하는 어른들은 돈이면 다 되는 줄 안다. 그러나 "속상한 내 마음은 심부름값 1000원으로 살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하는 어린이의 태도가 든든하게 다가와 다행이다. 버금으로 뽑은 '아빠의 음료수'도 어른을 대하는 어린이의 모습이 든든하게 다가오는 글이다. 늘 술 냄새를 내며 들어오시는 아빠가 짓궂게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지만 어려워하시는 마음을 이해하는 아이다. 아빠를 피할 법도 한데 오히려 아빠가 궁금하여 살짝 방문을 열어보는 아이 모습이 그려진다. 술 냄새 나는 아빠가 안을 때는 싫은 마음도 분명히 있겠지만 "아빠에게 위로가 된다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어 참 다행이다.

버금으로 뽑은 '사마귀'는 "나도 불안하고 사마귀도 불안하"니 "둘이 똑 같다"는 표현으로 사마귀에 대한 마음을 충분히 보여준다. 서로 마음을 읽어내는 일은 사람 간이 아니라도 충분하다. 앞의 글에서는 어른이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였으나, 오히려 작은 생명의 마음마저 읽어내는 아이 마음이 사랑스럽다. '아빠의 육아휴직'을 쓴 어린이도 육아휴직을 한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아빠와 닮아가는 것 같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학원도 자주 가지 않아 집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은 때, 아빠와 함께 신나게 일상을 즐기는 장면이 이어져 재미를 더한다. "자유를 주는" 아빠라서 더 좋다는 아이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돈은 엄마가 벌면 되니까"라고 표현할 만큼 아빠와의 시간에 만족해하는 것. 이 장면에서는 우리 아이들에게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줄어들고 있다는 믿음도 갖는다.

이번에 들어온 글에서 예년과 많이 달랐던 점은 공부 스트레스와 관련한 소재가 줄었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많이 나타나고 있었다. 적은 인원으로 짧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생활이지만, 그 속에서 친구를 만나 좋고 선생님과 수업을 해서 즐거운 마음이 곳곳에 묻어난다. 어떤 어린이는 작년 이맘때 있었던 일을 자세히 밝혀 쓴 후, 단락을 바꾸어 지금의 다른 현실을 말하고 있다. 가족과 여행을 가고 친척들을 만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던 그때를 떠올리며 코로나가 얼른 사라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아이들, 어린이들의 소망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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