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 속 난봉꾼, 모든 것 잃자 구걸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으면 영원한 죄인

마을에 천하 팔난봉이 살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명문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는 식자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망종이 부모 덕에 남보다 많이 배운 것을 사람들에게 바르게 베풀지는 못할 망정 허구한 날 하는 짓거리가 협잡으로 남의 돈이나 알겨내고 주색잡기라면 부르지 않아도 제발로 찾아가는 위인이었다.

이놈이 그중 여색을 밝히는 난봉꾼이라 치마만 둘렀다하면 수작을 걸었다. 근동 청상이 훼절을 했네, 배부른 큰애기가 방천 둑에서 몸을 던졌네 하는 소문을 사흘거리로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동네 어른들은 "덤불 두들겨서 나온 놈 행우지 어데 가겄나" 하며 혀를 찼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서 조리돌림이나 멍석말이를 하지 않았다. 그 아비가 동척에서 불하받은 전답 문서를 피륙 쟁여 놓은 듯 머리맡 반닫이에 보관하고 있는 대지주였기 때문이다. 그 아비가 재 너머 주막 들병장수와 눈이 맞아 생긴 놈이 그놈이었다. 남의 눈을 피해 틈만 나면 산이고 들이고 헛간이고 물레방앗간이고 가리지 않고 덤불 다독거려 만든 자리에서 만든 놈이라 타고난 천성이 색골 팔난봉이라 했다.

대를 물려 마을을 쥐락펴락하던 그 아비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 사달이 났다. 사흘거리로 아이를 앞세운 여인들이 들이닥쳐서는 모두 아이 아비가 그놈이라며 방구들 하나씩 차고 드러눕는다. 요즘처럼 유전자 감식도 할 수 없고 지 놈이 아무리 아니래도 믿어 주는 이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 얼굴이 하나같이 한 송이 안에 든 밤톨이다.

한 살림씩 떼어서 입막음을 하고 나니 천석지기 재산이 거덜 나서 거지꼴이 돼가는데 이번에는 소작인들이 몰려들었다. 도지를 더 준다거나 떼지 않겠다며 술이야 돈이야 아비 몰래 받아먹다가 들통이 난 거였다. 거기에다 세상이 바뀌어 농지개혁으로 탈탈 털리고 나더니 남은 돈으로 술에 절어 정신줄까지 놓은 폐인이 되었다.

그에 굶어 죽을 판이 되자 제 잘못을 빌고 인정에 기대어 동네거지로 살더니 어느 날부턴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서 오줌 누다 삼청교육대 잡혀 가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풍문도 있었고 술에 취해 철둑 베고 자다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걱정하거나 안됐다며 혀라도 차주는 이 하나 없었다. 사람이 불쌍해 동냥 주머니에 보리쌀 한 줌 보태는 주었지만 그가 저지른 일을 지우지는 못했다.

몇 년을 질질 끌다가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무혐의라는 별장 성접대 뉴스를 보다 어이가 없어 옛이야기를 떠올렸다. 제 얼굴 빼다 박은 아이처럼 고화질 동영상에다 다른 증거까지 열 얹어 아홉 보태고도 남는데 세월이 흘러 옛일이니 면죄부를 준단다. 나쁜 짓에는 끔찍하거나 비정하고 뺏거나 훔치고 속이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이 범죄는 추악하기 그지없다. 피해자는 비참하고 보는 이는 역겹고 구역질이 난다. 법이 면죄부를 주었더라도 진심어린 뉘우침이 없다면 그는 영원한 죄인이다. 뉘우칠 기회를 잃은 그 옛날 천하 팔난봉은 모두 잃고 나서 용서를 구걸했지만 밥이나 빌었지 결국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었다. 그가 상고를 했다는데 참 뻔뻔하고 비열하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중 일부만이 용기를 내어 진심어린 사과를 하며 또 그중 정말 극소수가 진심으로 용서를 한다." 죄와 벌이라는 부제를 단 영화 <신과 함께>에서 염라는 덧붙여 이승에서 인간이 이미 진심으로 용서받은 죄를 저승은 더 이상 심판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소시효가 없는 저승까지 죄를 안고 가야 되겠나. 선택은 그만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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