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이어 전국 두 번째 도입
국민 삶에 큰 영향 주는 사법부
평가·공개 그 자체로 견제 기능
과거 비해 친절도 상향평준화
꼼꼼한 기록 검토·타당성 중시

경남지방변호사회가 서울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법관 평가제'를 도입해 우수 법관을 공개한 지 10년이 됐다.

2010년(2009년 법관 대상) 처음 평가 결과를 발표할 당시 법원은 공정성과 객관성이 의문이라며 난색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2번 법관 평가가 이어지는 동안 그 위상이 많이 달라진 듯하다.

현재 경남변호사회 법관평가위원장이자 전 경남변호사회 회장인 강재현 변호사를 만나 '법관 평가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강 평가위원장은 "처음 법관 평가제를 꺼냈을 때는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에서 굉장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비하인드로 법원장들에게 평가서가 도착하면 개봉하지 말고 폐기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정도로 신뢰를 받지 못했는데, 지금은 전국 변호사회가 법관 평가제를 모두 도입했을 만큼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법원의 거부감이 심했던 것은 애초 서울변호사회가 제도를 도입한 배경에 있다. 당시 한 법관 재판에 불만이 있던 변호사가 서울변호사회에 진정서를 내면서 소송까지 진행한 사건이 시초가 됐다. 판사와 변호사 간 해묵은 신경전이 법관 평가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법원장이 변호사회에 평가 결과를 인사고과 시점보다 일찍 발표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큰 신뢰를 얻고 있다. 이전에는 재판에 참여할 수 없는 법원장이 법관을 평가하고자 변호사회 회장을 만나 판사 동향을 비공식적으로 묻기도 했다.

강 위원장은 "서울과 달리 경남에서는 좋은 재판 사례가 있으면 격려해 더 좋은 재판을 하게 하고, 모범적이지 못한 재판 과정이 있다면 바로잡아 사법 서비스 질을 높이고자 제도를 도입했다. 인사고과에 참고자료로 활용된 것은 평가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 강재현 경남변호사회 법관평가위원장이 23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에 있는 법률사무소에서 경남변호사회 선정 우수법관 평가·발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신아 인턴기자 sina@idomin.com
▲ 강재현 경남변호사회 법관평가위원장이 23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에 있는 법률사무소에서 경남변호사회 선정 우수법관 평가·발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신아 인턴기자 sina@idomin.com

특히 경남변호사회는 도입 취지를 살리고자 전국에서 처음으로 각 법관에게 개별 평가서를 전달했다. 법원장에게 모든 판사의 평가서를 전달하고, 각 판사에게도 자신에 대한 평가서를 따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강 위원장은 "각 법관이 항목별로 받은 점수와 같은 항목의 평균 점수를 함께 기재한다. 주관식처럼 변호사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글을 쓰기도 하는데 아주 신랄한 비판도 있고 존경을 표하는 내용도 달렸다. 어느 법원장은 판사들 민원이라면서 개별 평가지는 전달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평가제도 본질은 당사자에게 평가 결과를 전달해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 변호사들이 생각하는 좋은 법관은 어떤 법관일까.

강 위원장은 "변호사들은 형이 센 판사들에게 어느 정도 저항감이 있다. 아무래도 변호사도 사람이기에 인기 없는 판사들에 대한 평가가 박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오랫동안 평가 결과를 봐왔지만 전혀 관계가 없었다. 결국은 재판에서 기록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구체적으로 사건 당사자 이야기를 경청하는 과정을 거쳐 공정하게 결론을 내리는 판사를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고 했다.

10년이 지나면서 법관 평가 방향도 달라졌다. 과거 친절도와 같은 형식적인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면 지금은 내용에 더 집중한다.

강 위원장은 "과거에는 흔히 막말하는 판사들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평가 결과를 보면 친절도 면에서는 변별력이 없을 정도로 상향평준화됐다. 형식이나 포장보다는 재판 자체의 타당성이나 정의, 진실을 제대로 탐구해 적합한 결론을 내리는 그런 내용을 핵심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판 본질을 잘한다'는 부분을 계량화해 차이를 두는 게 어렵지만 그게 지금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법관은 국민 삶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지만 탄핵을 하지 않고서 지위를 박탈할 방법이 없다. 선출직이 아니기에 선거로 심판할 수도 없다. 강 위원장은 이들이 수요자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사법부가 권력으로부터는 독립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바람직한 재판을 위한 수요자의 지적, 요구는 간섭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고 본다. 변호사는 수요자를 변론하고 다양한 법관을 경험하기 때문에 시민들을 대신해 법관을 평가할 수 있는 적임자로, 앞으로 공익적 관점에서 시민들을 위한 좋은 사법부, 좋은 사법 서비스를 만들고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평가 대상인 사법부 또한 제도 취지에 공감하고 평가 결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강 위원장은 "평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평가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법관 스스로 절제하는 부분이 있다. 법관들도 소비자 의견을 소중하게 여기고, 평가 결과에 다소 억울한 부분도 있고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더라도 오해를 줄일 방법을 고민하는 자세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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