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70% 아동기 피해 경험…상담 과정서 폭력 '인지' 경우도
1997년 특례법 제정 공적 개입…23년 간 피해자 보호 장치 개선
가정 내 문제 아닌 사회 문제…가해자 상담·교육 확대 필요

"한 그루가 아닌 온갖 나무가 함께 물들었을 때 '단풍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처럼 건강한 가정도 구성원 하나하나가 모두 행복해야 이룰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이 공적 개입이 가능한 범죄로 인정받은 것은 1997년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다.

법 제정으로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법적 근거는 마련했지만, 정작 피해자를 보호할 구체적인 제도나 시설 등 여건은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았다.

부부상담(가족 초심 찾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가정폭력 가해자를 상담한 박정연 경남심리상담협회 교육원장은 법 제정 당시에도 가해자 프로그램 필요성이 제기됐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근본 원인인 가해자가 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피해자 지원이 워낙 시급해 가해자 논의는 미뤄두기로 했던 것이다.

이후 23년이 흐르는 동안 가정폭력상담소, 여성긴급전화 등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들이 생겼고, 피해자 쉼터가 마련되는 등 피해자 보호 장치가 갖춰졌다.

박 원장은 이제 가해자 이야기를 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그는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동안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은 물론이고 성 의식도 획기적으로 변화했다"면서 "여성 가해자도 있지만 대부분 남성 가해자가 많다.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이제는 피해자만 지원할 게 아니라 가해자도 만나봐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보호 시스템도 마련했고, 사회적인 환경이 바뀐 만큼 가해자가 가진 본질적 문제를 들여다 보고 해결하는 방식의 가정폭력 예방이 필요해졌다는 뜻이다.

▲ 박정연 경남심리상담협회 교육원장이 인터뷰 하고 있다. /김해수 기자
▲ 박정연 경남심리상담협회 교육원장이 인터뷰 하고 있다. /김해수 기자

그렇다면 박 원장이 이번 프로그램에서 만난 가해자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거의 모든 참가자가 억울하다고 얘기한다. 폭력 때문에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으니 집에 가도 봐주는 사람도 없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 술을 마시고 폭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면서 "특히 경제와 폭력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데 요즘 코로나 때문에 경기가 어렵고, 실직자도 많다 보니 갈등을 더 많이 겪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가해자 중에는 자기 행동이 폭력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박 원장은 "물리적인 폭력뿐 안이라 경제적인 것, 언어적인 것, 정신적인 것 등이 모두 폭력인데 폭력이 폭력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며 "실제로 가족과 대화를 거의 욕으로 하는 참가자가 있었는데 상담을 받기 전까지 그게 폭력인 줄 몰랐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가정폭력 가해자들은 자라온 환경에서 몇몇 공통점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10명 중 7~8명은 아동기 때 가정폭력을 경험했거나가족 관계가 아주 안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했다.

참가자 한 사람당 3회로 짧은 상담 프로그램이었지만 만족도는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박 원장은 "대부분이 어릴 적 형한테 당한 이야기, 아버지한테 당한 이야기 등 자기 이야기를 살면서 처음으로 해본다며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응어리를 풀면 가족을 대하는 것도 훨씬 부드러워진다"면서 "한 참가자는 상담을 받고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고 하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눈물로 사과를 한 참가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가정폭력 가해자 지원'이라는 접근법이 왜 중요한지 들어봤다.

그는 "한 가정을 살리는 건 한 사회를 살리는 것과 같다. 기본적으로 가정이 안정돼 있지 않으면 가족 구성원들이 폭력의 연속선상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도 가정폭력 예방이 꼭 필요하다"면서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가해자든 피해자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즐거워야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구성원 각자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도록 돕는 사회복지적인 접근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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