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경찰청 올해 첫 운영 이후
분노·의사소통·폭력행동 개선
처벌 강화 틀 벗어난 접근 주목

경남경찰청과 여성긴급전화1366경남센터, 경남도가 협력해 올해 처음으로 가정폭력 가해자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가해자를 왜 지원하느냐?'라고 물을 수 있지만 가정폭력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가해자 또한, 폭력이 끝나면 피해자들과 살을 비비며 생활해야 하는 가족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접근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으나, 첫걸음 자체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번 프로그램의 상징적 성과를 짚어보고, 앞으로 가정폭력 접근법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알아보자.

#박명우(가명) 씨는 인정받는 사회인이지만 가정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언제나 바깥 일이 우선이었고 어쩌다 집에 있는 날이면 눈에 보이는 것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욕설은 생활이었고 가족들에게 모진 말을 서슴없이 뱉었다. 명우 씨 역시 아버지 고함 속에서 자랐다. 그런 아버지가 죽을 만큼 싫었지만 무의식 속에 '아버지는 그래도 된다'는 생각이 박여있었다.

#김영재(가명) 씨는 새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친어머니가 자신을 떠났다는 원망 때문이었을까. 원만한 가정생활이 어려워 재혼만 여러 번 했다. 여성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세상 모든 문제의 원인을 아내에게 돌리도록 했다. 가정에서 안정을 찾지 못한 영재 씨는 밖으로만 돌았다. 틈만 나면 사람들에게 연락해 밥과 술을 샀다. 며칠을 취해 돌아온 영재 씨에게 아내가 한 마디 건네는 날이면 폭행이 시작됐다.

같은 문제가 반복할 때 결과에만 대응하는 방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가정폭력 문제는 빈약하고 더 시급한 '피해자 보호'에 집중해 왔다.

폭력 발생 가정은 각기 다른 문제를 안고 있고, 그 저변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어린 시절 환경과 기질, 성격, 가족 구조 등이 깔렸다. 가해자 처벌 강화와 피해자 지원 확대만으로 가정폭력이 줄지 않는 이유다.

◇상담 참가자 만족도 높아 = 과거와 비교해 가정폭력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고, 충분하지는 않지만 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한 장치가 마련됐다. 이제 원인, 가해자에게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가해자 이야기를 다루는 부부상담(가족 초심 찾기) 프로그램은 진일보한 접근법이다.

프로그램 대상은 가정폭력이 많이 발생하는 도내 5개 경찰서에 신고된 가정폭력 가해자다. 상담에 동의한 51명에게 전문 상담사와 3번 상담하도록 했으며, 지난 6월부터 이달 16일까지 총 140회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 참가자 중 24명이 응답한 설문 결과를 보면 가해자 성별은 남성 75%(18명), 여성 25%(6명)였다. 연령은 40~5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프로그램 만족도는 높았다. 상담 이후 행동 변화를 묻는 항목에 '많이 좋아졌다'가 50%(12명), '다소 좋아졌다'가 50%(12명)로 참가자 모두 긍정적인 답을 했다. '행동이 변화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는가' 항목에는 54.2%(13명)가 '정말 도움이 됐다', 45.8%(11명)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의사소통·자신감 변화 = 참가자들이 꼽은 가장 많이 변화한 부분은 '언어(표정, 말)' 58.3%(14명), '생활습관' 29.2%(7명), '자녀를 대하는 태도' 8.3%(2명), '행동(폭력이 줄었다)' 4.2%(1명) 순이었다.

특히 상담 전후 분노, 의사소통, 자신감, 폭력행동에서 유의미한 통계 양상을 보인 점은 희망적이다. 이는 참가자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됐다는 의미로 건강한 부부관계와 가족관계를 회복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참가자 ㄱ 씨는 "(상담을 하며) 일상생활에서 느껴보지 못한 온화한 느낌이 들었고, 가정의 길잡이가 됐다", ㄴ 씨는 "(상담을 해보니) 생각의 차이에서 행동이 바뀌는 것 같다"고 소감을 남겼다.

상담에 참여한 박정연 경남심리상담협회 교육원장은 "가해자들 중 자기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면서 "갈등이 생겼을 때 바로 논의하고 풀면 문제가 커지지 않는데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번 프로그램이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가정폭력 예방효과 톡톡 = 참가자들은 가정폭력으로 보통 3~4번, 많게는 11번 신고를 당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상담 이후 재신고된 사람(16일 기준)은 51명 중 단 2명(3.9%)으로 나타났다.

최근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이 살인 등 강력범죄로 확대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만큼 파생 범죄 예방 차원에서도 꼭 관리가 필요하다.

이호 경남경찰청 여성보호계장은 "가정폭력 가해자가 법원까지 가기 전에 경찰 차원에서 범죄를 예방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 다른 경찰서로도 확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다만 설문 결과 상담 프로그램이 부부갈등과 폭력인식, 심리상태, 결혼만족도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은 과제로 남았다. 이는 지역 관계기관들이 지속적으로 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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