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문학관서 10분 거리
남변마을 회나무 아랫길
개성 강한 6개 점포 모여
옛동네 이색적인 분위기

남해읍은 남해 여행의 시작과 끝이다. 특히 대중교통 여행자라면 더욱 그렇다. 자동차로 노량대교나 남해대교를 통해 남해로 왔다면 남해읍을 지나기 마련이다. 예전이라면 시골 읍에 뭐 볼 게 있느냐 싶었지만, 젊은 층의 귀촌이 늘어난 요즘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도심이 작긴 하지만 개성 있는 동네 카페에서 브랜드 카페까지, 파리에서 제빵을 배운 쉐프가 운영하는 동네 빵집에서 프랜차이즈 빵집, 그리고 수제 맥주 전문점과 남해 특산물과 제철재료가 가득한 퓨전 레스토랑도 있다. 남해전통시장에서는 특산물을 살 수도 있고, 싱싱한 회나 고소한 생선구이 시원한 물메기탕을 먹을 수도 있다. 아담하고 고즈넉한 남해성당은 뜻밖에 가볼 만한 곳이고, 근처 남해향교도 둘러보면 좋다. 특히 남해군청이 참 예쁘다. 군청은 옛 동헌 자리에 그대로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 고지도에도 나오는 큰 느티나무가 아직도 군청 뜰에 살아있는데, 군청 건물과 어우러져 그 운치가 꽤 좋다.

2010년 읍 외곽에 문을 연 남해유배문학관은 유배문학에 관한 자료를 전시해 놓은 국내 최초 전시관이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유배객들만 180여 명에 달할 정도로 남해는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건물 앞에 달구지를 타고 가는 유배자 조형물이 있고, 그 뒤로 서포 김만중(1637~1692)의 청동 좌상과 약천 남구만(1629~1711), 소재 이이명(1658~1722), 겸재 박성원(1697~1767) 등 문학비가 책처럼 펼쳐져 있다.

건물 안에는 향토역사실과 유배문학실, 유배체험실 그리고 남해 유배객 6명이 남긴 문학작품과 문학 혼을 만날 수 있는 남해유배문학실이 있다.

▲ 남변마을 회화나무. /이서후 기자
▲ 남변마을 회화나무. /이서후 기자

문학관을 둘러봤다면 10분 정도 걸어서 '회나무 아랫길'로 가보자. 남해도립대학 근처에 있다. 이곳은 남해군이 의욕적으로 꾸민 일종의 도시재생 지역이다. 최근 청년상인점포 6곳이 개점하면서 나름 산뜻한 모양새를 갖췄다. 커다란 회화나무가 상징처럼 우뚝한 거리다. 이 나무는 예로부터 길상목(吉祥木)이라 불리며 마을 수호신 노릇을 했다.

▲ 둥지싸롱서 판매하는 소품들. /이서후 기자
▲ 둥지싸롱서 판매하는 소품들. /이서후 기자
▲ 둥지싸롱 입구. /이서후 기자
▲ 둥지싸롱 입구. /이서후 기자
▲ 절믄나매 입구. /이서후 기자
▲ 절믄나매 입구. /이서후 기자

이 거리가 젊은 거리로 변신한 것은 이곳에 처음 자리를 잡은 둥지싸롱과 절믄나매 덕분이다. 둥지싸롱은 둥지기획단이란 남해 젊은 기획자들이 만든 공간으로 지금도 남해 토속음식 만들기 같은 재밌고 다양한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한다. 절믄나매는 남해 특산물을 활용해 요리하는 레스토랑이다. 두 공간에 덕분에 거리에 활기가 돌자 남해군이 이곳에 본격적으로 '청년상인점포 창업지원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으로 카페 판다, 글꽃 아뜰리에, 회나무 양복점, 네코나매, 디저트4줭, 미쁘다 같은 개성 있는 가게들이 새로 들어서며 이색적인 거리가 완성됐다.

회나무 아랫길 입구 담벼락에 '어서 오시다'란 글자가 선명하다. 어서 오시라는 남해 지역 말이다. 이렇게 거리 주변 남변마을과 죽산마을 일대에 아기자기한 벽화가 있어 사진찍기에도 좋다. <끝> 

▲ 김진수 절믄나매 대표. /이서후 기자
▲ 김진수 절믄나매 대표. /이서후 기자

김진수 절믄나매 대표

아버지 일하던 곳서 이젠 제가 요리하죠

요즘 남해읍에 맛집으로 소문이 난 음식점이 있다. 파스타 전문점 '절믄나매'다. 남해읍 남변마을 회나무 아랫길에 있는 이 식당은 남해에서 나고 자란 김진수(32·사진)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다. 지난 2018년 1월 문을 열었다. 공수부대 부사관 출신인 그는 제대 후 싱가폴과 호주, 홍콩, 캐나다 등지에서 요리를 배우며 5년 넘게 지내다 귀국해 고향에서 식당을 열었다. 남해로 돌아오기 전까진 외국에서 레스토랑 매니저와 오너 셰프로 일했었다.

"원래 한국에 올 생각은 없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하셔서 돌아왔어요. 귀국한 뒤에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유리판매업 매장이 있던 자리에서 장사하고 있어요. 원래는 2년 정도만 여기서 일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어머니에게 식당을 내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따로 세를 줄 생각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그는 남해 출신답게 고향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

"잘 다져진 해안도로가 있어요. 자연경관도 아름답고요. 바다와 산이 공존하는 남해는 관광도시로서 가능성이 큰 동네예요."

 

▲ 김진수 둥지싸롱 대표. /이서후 기자
▲ 김진수 둥지싸롱 대표. /이서후 기자

김맹수 둥지싸롱 대표

지역 사람들에게 배움창고로 통해요

절믄나매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엔 부산 출신의 김맹수(52·사진) 씨가 지역민들과 함께 운영하는 둥지싸롱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15년 9월 문을 열었다. 처음엔 수제 스테이크를 파는 식당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업종을 바꿔 영어원서 읽기 모임, 생활자수 동아리, 천연염색 체험수업, 쿠킹 및 베이킹 수업 등을 진행하는 문화 공간이 됐다. 지역민들 사이에선 '배움 창고'로 통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남해에 주소를 둔 지역민들에게 매월 적게는 1만 원에서 많게는 4만 원까지 적은 비용으로 수업과 모임 자리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둥지싸롱이 운영하는 수업과 모임에 참여한 주민은 지난 3년간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8년 전에 남해로 내려왔어요. 연고가 있어서 온 건 아니었어요. 남해는 여행자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많지만, 주민 대상 프로그램은 부족하더라고요. 관공서나 대학에서 진행하는 것들이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2019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지역민 대상 모임과 수업을 진행하게 됐어요."

그가 생각하는 남해만의 매력은 뭘까.

"남해는 저개발 도시예요. 개발이 안 된 것 자체가 가치가 있죠. 이렇게 개발이 되어 있지 않은 곳은 찾아보기 어려울 거예요. 남해가 아닌 거제에 조선소가 지어져서 불만을 가진 토착민들이 있지만, 남해만큼은 지금 모습처럼 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남아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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