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발전에도 똑같은 밑바닥 노동 실태
양 노총·여야·기업 책임 무겁게 느껴야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1970년 당시 대학 2학년 재학 중이던 나는 열사 분신 직후 학회연합회 주관으로 청계피복시장 노동실태조사를 나갔다. 건물 중간에 다락으로 만들어진 간이 2층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허리를 굽히고 일하고 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뿌연 먼지가 흩날리는 속에서 그들은 가족생계의 무게에 눌려 잠을 줄이고 폐질환을 숨겨가면서까지 일했다. 열사의 분신은 우리 모두를 일깨웠다. 노동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민주적 노동운동도 시작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열사에게 무궁화훈장을 추서했다.

열사가 가신 후 50년 동안 노동자들에게는 무엇이 변했는가. 우리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세계 10위 수출대국으로 올라섰다. 국민들의 의식주 생활 수준은 크게 높아졌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은 없어졌고 오히려 비만을 걱정할 정도다. 선진국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노동분야에서도 1987년 민주화를 계기로 합법적 노동조합운동이 보장되었다. 공공부문과 대기업 중심의 250만 조직 노동자는 노동조합의 힘을 바탕으로 상당한 임금인상과 고용 안정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 한국에서 밑바닥 노동자들의 삶은 어떠한가. 외환위기 후 기업의 이윤 확보를 위한 비정규직 사용이 크게 늘어났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의하면 2020년 8월 비정규직 규모는 748만 1000명(36.4%)이고 여기에 장기임시근로자를 포함하면 855만 7000명(41.6%)이다.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171만 1000원으로 정규직 323만 4000원에 비해 152만 3000원이나 적다.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고용보험 46.1%, 건강보험 49.0%, 국민연금 37.8%에 그친다. 특수고용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9.6%에 불과하다. 산업구조와 기술의 변화로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 다양한 비정규 고용형태가 생겨났지만 노동인권의 사각지대가 되었다. 5인 이하 영세사업장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인공지능 뒤에 숨은 자본에 지배되면서 노동자 지위도 인정받지 못한다. 노동조합도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전체 노동자 가입률은 12.3%로 낮은데 정규직 가입률 19.3%에 비해 비정규직은 2.5%로 미미하고 특수고용노동자는 0.6%로 노조가 있으나마나다. 그러니 노동자들은 자살, 고공농성 등 극한적 방법으로 저항한다. 전태일 열사 당시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저임금으로 자존감이 떨어진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 택배노동자들은 감히 청혼을 하지 못한다. 결혼해도 육아와 교육비 부담으로 출산이 두렵다. 비정규직 차별 문제는 우리 사회의 재생산까지 위협한다. 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동조합법 개정을 계속 미루면 한·유럽연합FTA 위배로 유럽연합의 통상제재를 받을 수 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경쟁력에도 장애가 된다.

이제 고도 경제성장에 걸맞도록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권익을 보장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5인 이하 영세기업 노동자도 저임금, 장시간·야간노동, 산업재해 위험에서 보호해야 한다. 노동조합법을 개정하여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한국노총·민주노총의 조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차별 해결에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노동인권과 민생은 심각한데 여·야는 상대방 언행을 트집 잡는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집권여당 민주당의 책임이 더 무겁다. 표를 몰아준 국민의 시대적 요구를 계속 외면하면 콘크리트로 착각한 지지율도 속절없이 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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