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보도연맹 재심 무죄 판결
유족 "감사하지만 너무 늦어"
변호사 "가해자 추적 절실해"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이었다는 이유로 국가에 의해 무참히 희생당한 민간인 15명이 재심 절차에 따라 70년만에 억울함을 풀었다.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형사1부(류기인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한국전쟁 당시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를 받아 희생된 고 송기현·심상직·심을섭·김현생·권경순·김임수·변재한·변충석·이쾌호·이정식·변진섭·강신구·김태동·이용순·황치영 씨 등 15명에 대한 재심(5건) 사건에서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2월 마산지역 6명, 5월 부산지역 2명에 이어 세 번째 무죄 판결이다.

재판부는 "변호인들 통해 전해 주신 많은 말씀 재판부에서 꼼꼼히 확인했고, 검찰에서도 무죄 구형의견을 말씀해주셨다"며 "기나긴 시간 동안 겪었던 마음의 고통에 대해 뭐라고 드릴 말씀을 찾지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방청석은 희생자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 인사들로 가득 찼다. 그토록 기다리던 무죄 선고였음에도 유족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이들은 마산지원 앞에서 시민사회노동단체로부터 축하 꽃다발을 받았다.

▲ 지난 20일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1부가 마산보도연맹사건 희생자 15명에 대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진은 왼쪽부터 고 황치영 씨의 아내 이귀순 할머니 모습. /김신아 인턴기자 sina@idomin.com
▲ 지난 20일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1부가 마산보도연맹사건 희생자 15명에 대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진은 왼쪽부터 고 황치영 씨의 아내 이귀순 할머니 모습. /김신아 인턴기자 sina@idomin.com

심재규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 감사는 "유족들은 무한한 한탄과 슬픔 속에서 70년간 '무죄'라는 한마디를 기다려 왔는데 지금 이순간 마음이 풀리는 듯하다"며 "더이상 무슨 말을 하겠나"라고 말했다.

고 황치영(당시 23세) 씨 아내 이귀순(92) 할머니도 이날 휠체어를 타고 시민들의 축하를 받았다. 둘째 딸 황정둘 씨는 "감사하지만, 판결이 너무 늦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어머니 기억이 멀쩡했던 3년 전이었다면…"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변론을 맡았던 박미혜 변호사는 "과거사 관련 법들이 정비되지 않아 자신의 억울함을 변호사를 통해 해결해야만 한다면,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다"라며 "과거사법 정비와 함께 가해자에 대한 추적 등 국가의 숙제가 남아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의미로 판결을 받아들이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이 끝난 뒤 열린사회희망연대를 비롯한 14개 시민사회노동단체는 마산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죄 판결을 환영했다. 이들은 "정부가 나서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고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가해자를 밝혀 처벌하라"고 말했다. 이어 "재판기록이 있는 피해자만이 재심 신청을 할 수 있는 현실에 주목한다"라며 "실질적인 진실규명, 명예회복 방안을 정부가 내놓을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 재판이 끝난 뒤 유족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김신아 인턴기자 sina@idomin.com
▲ 재판이 끝난 뒤 유족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김신아 인턴기자 sina@idomin.com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6월 과거사 정리 기본법 개정에 따라 오는 12월 10일 새롭게 출범한다. 1기 위원회 활동이 종료됐던 2010년 12월 이후 꼭 10년만이다. 조사 범위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전후, 군사정권 시기 이뤄진 국가에 의한 민간인 희생, 의문사 등을 망라한다.

보도연맹은 이승만 정권이 1949년 6월 만든 반공단체다. 보도연맹원들은 한국전쟁 때 북한에 동조할 것이라는 이유로 전국 곳곳에서 국군과 경찰 등에 의해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다.

국민보도연맹 희생자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2월에는 고 노상도 씨를 비롯한 6명이 전국 최초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5월 31일에는 부산에서 고 박태구, 정동룡 씨가 무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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