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지 선생 4264㎡ 숲 군에 기부
사색 잠기기 좋은 곳 올여름 개장
편백 수십만 그루 사이로 드는 볕
세상만사 잊히고 온몸 감각 깨워

늦가을 숲은 차분한 수직입니다. 수직과 차분함은 어울리지 않지만 편백 숲이라면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곳은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 하동편백자연휴양림입니다. 입구 안내소에서 추천한 산책로 2코스 마음소리길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산책로는 모두 3갈래인데, 2코스(1.5㎞)를 포함해 1코스 상상의 길(2.7㎞), 3코스 힐링길(1.7㎞)입니다. 휴양림은 숲 속에 가만히 머무른 것도 좋지만, 야자 매트와 나무 계단을 지나 나무 부스러기길과 흙길을 따라 걷기에 더 알맞게 꾸며졌습니다.

▲ 하동편백자연휴양림 편백숲. /이서후 기자
▲ 하동편백자연휴양림 편백숲. /이서후 기자

◇재일교포 사업가의 편백 숲 기부 = 하동편백자연휴양림은 올해 여름에 개장했습니다. 하동 출신 재일교포 사업가로 하동버스터미널을 운영하던 고 김용지 선생이 2015년 6월 자신이 가꾸던 옥종면 위태리 산 279-1번지 일대 30만 4264㎡(50㏊) 숲을 하동군에 무상 기부했는데, 이 산림을 토대로 만든 곳입니다. 1928년 하동읍에서 태어난 선생은 12살에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그곳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해방 후 바로 산업전선으로 뛰어들었습니다. 1965년 즈음 일본에서 토목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고요.

선생이 옥종면 위태리에 편백 숲을 꾸미기 시작한 건 1976년부터입니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며 한국을 오가던 중 비행기에서 한국전쟁으로 황폐화된 산등성이들을 보며 뭔가 고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 싶었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매년 편백나무 묘목 1만 그루씩 3년 동안 3만 그루를 가져와 헐벗은 산에 심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해 편백나무가 35만 그루까지 늘어났죠. 현재 선생이 기부한 하동편백자연휴양림에는 크고 작은 편백 20여만 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 하동편백자연휴양림 쉼터. /이서후 기자
▲ 하동편백자연휴양림 쉼터. /이서후 기자
▲ 하동편백자연휴양림 편백숲. /이서후 기자
▲ 하동편백자연휴양림 편백숲. /이서후 기자

◇온몸으로 맞이하는 편백의 기운 = 2코스는 평지와 오르막이 번갈아 나타나며 서서히 고도가 올라가는 코스입니다. 숨이 제법 가빠지려 할 즈음 대나무 벤치가 나옵니다. 대나무 둥치에 앉아 고요를 즐깁니다. 문득 '내가 여기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이건 머리가 아닌 온몸이 하는 생각입니다. 눈을 감고 열 걸음만 걸으면 알 수 있는 감각입니다.

보통은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함에 온몸의 감각이 발버둥을 치며 깨어납니다.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이죠. 온몸으로 생각한다는 건 이런 느낌과 가깝습니다. 사실 우리는 세상을 온몸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머리로는 잘 모르겠는데, 무언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그게 바로 온몸의 생각입니다. 그걸 다른 말로 직관이라고 부르는 거겠죠.

생각에서 깨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숲으로 스며드는 빛의 향연에 눈이 즐겁습니다. 편백나무로 빛이 스며드는 방식은 독특합니다. 가늘고 길게 때로 날카롭게 그렇지만 아주 조용하게, 어떤 곳은 나무 둥치 아래에까지 손길을 뻗습니다. 수직의 숲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습니다.

▲ 하동편백자연휴양림 편백숲. /이서후 기자
▲ 하동편백자연휴양림 편백숲. /이서후 기자

다시 한참 걷다 보니 새삼 편백 숲이 꽤 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보통 이렇게 높은 나무들이 숲을 이룬 땅에는 풀이 잘 자라지 못합니다. 편백 숲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중에도 햇살을 받아 빛나는 푸른 잎들이 더러 보입니다. 대견하다기보다는 앞서 가을꽃처럼 그저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을꽃이나 편백 숲에서 외롭게 자라는 식물들은 나는 식물이고 조건이 되면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운다, 이 간단한 의식뿐입니다. 아니 의식이라고 할 수도 없겠네요. 그저 간단한 자연법칙이라고 합시다.

이런 자연법칙이 인간에 이르면 복잡해집니다. '나는 나'이지만, '사회 속에서의 나', '가족 속에서의 나'입니다. 나 자신으로 살기에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자주 봅니다. 당연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 숲속의 집 B동. /이서후 기자
▲ 숲속의 집 B동. /이서후 기자

◇벼랑 끝 숙소가 보여주는 절경 = 2코스 끝까지 갔다 돌아오는 길은 임도를 따릅니다. 임도라도 빽빽한 편백 숲 사이에 난 것이라 산책로와 비교해도 전혀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망이 트인 곳이 많아 가슴은 더 후련합니다. 곳곳에 다양한 형태의 쉼터가 마련돼 있어 하동군이 열심히 꾸민 티가 납니다. 임도에서 보니 저 멀리 지리산 연봉이 훤합니다.

이런 풍경 속에 휴양림 숙소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숲속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A동과 B동, 그리고 글램핑장이 있습니다. 특히 A동에 속한 건물들은 임도 변 벼랑 끝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창 밖으로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천왕봉에서 숙소동 사이에는 지리산 줄기가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동편백자연휴양림 숲속의 집 예약은 전국 자연휴양림 통합예약 누리집 숲나들e(www.foresttrip.go.kr)를 통해서 하면 됩니다. 코로나 상황에 따라 운영 상태가 달라지니 미리 공지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휴양림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300원, 노인·장애인·국가유공자는 무료입니다.

▲ 숲 속의 집 풍광. /이서후 기자
▲ 숲 속의 집 풍광.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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