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생겨나고 사라지는 가게들
먹고사는 고난에 붉어진 계절

만추다. 떨어지는 노란 잎사귀와 붉은 '임대 문의' 문구가 빗물에 젖는다.

새로 들어선 건물에 줄지어 붙은 문구가 아니다. 떨어지는 낙엽만큼이나 거리 곳곳 글씨가 보인다. 유리창 넘어 영업 흔적이 남은 모습 그대로 임대 문구가 붙었다.

바로 옆 음식점은 줄을 기다려야 점심을 먹을 수 있다. 같은 전문요리에 유독 이곳만 잘되는 이유는 맛의 차이 때문일까. 문 닫은 음식점이 많아 열린 곳이 이곳뿐이기 때문일까. '코로나19 때문이야'로 퉁 치기엔 새빨간 임대 문구가 너무도 붉게 보인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수가 등락을 하는 사이, 바이러스와 함께 산 시간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지난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고용동향'에 의하면 청년층(25~39세) 취업자 수는 771만 3000명으로 2019년 동월 대비 33만 2000명이 감소했다. 2009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상용직 감소가 가장 컸으며 그럼에도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증가세를 보였다.

코로나19로 40~50대가 운영하다 폐업하는 음식점은 늘어났다. 힘들지만 음식배달로 승부를 걸어 볼만하다는 소문은 청년들이 빈 점포를 찾아다니게 만든다. 아버지가 내어 놓은 임대 문의에 아들이 전화를 걸고 있다. 막혀버린 취업 길에 청년들이 생계형 창업으로 시선을 바꾼다. 도로 위에 잠깐 멈춰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배달노동자는 끊임없이 바쁘게 달리고 있다.

영혼까지 끌어 담는 대출로 순식간 새로운 점포들이 생긴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처럼 음식점 창업의 꿈은 크지만 현실은 그 누구도 솔루션을 제시하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음식점들은 얼마 가지 않아 문을 닫는다.

사람들이 몰리는 프랜차이즈도 마찬가지다. 포화상태이지만 우후죽순 생겨난다. 한집 건너 커피숍이 들어서고 같은 음식점이 생겨났다 사라진다. 가게 문을 연 지 한 달 만에 다른 상호로 바뀌는 전경은 어떤 삶의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뽑기방과 코인노래방 지나 빈 점포만큼 무인점포가 늘어난다.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에게 코로나19는 가장 깊숙이 치명타를 내었다는 이야기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자꾸만 변하는 거리풍경으로 체감한다.

매일 점심을 먹는 그 음식점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새로운 직원이 생긴 것일까. 부모님이 운영하는 음식점이 가족기업이 됐다.

코로나19에도 가게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점심식사 시간이다. 오늘따라 유독 길다. 사장님의 한숨 속 '버티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로 정신을 무장하지만 매달 누적되는 적자가 가을을 더욱 붉게 만든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 고난의 연속이다. 긴 줄 뒤 먹게 된 점심, 거리 두기를 최대한 지키기 위한 자리 배치도 긴 줄을 만든다. 이러한 악의 고리는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장사를 하지 못해도 매월 찾아오는 임대료가 있다. 바이러스 백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희망은 누적된 고통을 해소시키진 못할 것이다.

불안과 우울은 숟가락을 뜨는 동안에도 귀로 들린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과 당장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밥을 먹는다. 창밖 비가 내린다. 사람도 계절도 색이 변한다. 이 가을, 바람이 분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