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출판사·지역민 합심
시리즈 시집 출간 첫 결실
시 읽고 넉넉한 저녁 나눠

오랜 세월 묵묵하게 지역을 지킨 서점과 농사를 지으며 좋은 책을 만드는 지역 출판사 그리고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유명한 농부 시인, 이런 조합이라니 안 가볼 수가 없었다.

지난 12일 저녁 진주문고에서 열린 서정홍 시인 새 시집 <그대로 둔다> 북토크 및 낭독회를 찾았다. 최근 청소년이나 아동도서 출간이 많았던 서 시인에게는 5년 만에 내는 '어른 시집'이다. 시집을 낸 곳은 하동군 악양면에 있는 작은 출판사 상추쌈이다.

"그동안 보니까 제가 책을 주로 서울에 있는 큰 곳에서 냈더군요. 지역 출판사라도 좋은데 있으면 내면 되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상추쌈이라고 이름이 정겨운 출판사가 주변에 있었습니다."

상추쌈 출판사는 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로 유명한 보리출판사 출신 서혜영·전광진 부부가 아내의 고향인 하동군 악양면으로 귀촌하면서 만든 것이다. 출판사를 한 지는 10년이 다 됐는데, 아이 셋을 키우며 농사도 지으면서 책을 만들고 있다.

▲ 〈 그대로 둔다 〉 서정홍 지음
▲ 〈 그대로 둔다 〉 서정홍 지음

시집과 함께 부쳐온 출판사 편지 내용을 보자.

"시골에 살면서 좋은 것 가운데 하나는 마을 어른들의 말씀을 더러 듣게 되는 일입니다. 늘 지나듯 하시는 말씀이지만 그 마디마디에 몸에 밴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중략) 어떤 말씀들은 그야말로 시와 같았습니다. 일하고, 마을 사람들끼리 어울리고, 자연을 받아들이고 하는 모습들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에 닿아 있는 시집을 내자. 그런 생각으로 상추쌈 시집을 시작합니다."

서정홍 시인의 시집이 바로 상추쌈 시집 시리즈 첫 번째 책이다.

낭독회에서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는 시집 4부에 실린 시들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앞선 3부까지는 농부 시인으로 시골 생활을 주로 노래했다면 4부에는 눈이 불편한 며느리를 받아들이며 처음에는 걱정했다 결국 행복해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셋방살이 어렵고 힘들게 키운 아들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아가씨 손을 잡고/ 혼인을 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잘 생긴 아들이 무엇 하나 모자람 없는 아들이/ (부모 눈엔 다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무슨 인연이기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과/ 한평생 살려고 한단 말인가?" ('마음에 들어가서' 중에서)

관련 내용은 서 시인의 아들 서한영교 씨가 지난해 출간해 화제가 된 책 <두 번째 페미니스트>(아르테, 2019년 6월)에도 나와 있다. 아들 걱정이 지나친 탓에 처음에는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며느리 영미 씨는 지금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족이다.

"아버지, 밥상에 있는 반찬을/ 제 앞에 조금씩 놓아 주시겠어요?// 바로 앞에 놓인 반찬조차/ 잘 보이지 않는 네가/ 시아비한테 스스럼없이 이런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내공을 쌓았을까 … 영미야, 너를 만나 참 고맙다/ 너와 인연을 맺기까지/ 네 곁에서, 네 눈이 되어 준/ 모든 분들도 참 고맙다"('영미에게' 중에서)

상추쌈은 상추쌈 시집 시리즈 두 번째로 합천에서 농사짓는 청년 농부 김예슬(필명 '서와') 씨의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준비하고 있다. 이날 낭독회에 김 씨도 참석했는데, 서 시인의 시집에 그와 관련한 시가 실려 있다. 당연히 김 씨가 직접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시를 낭독했다.

"농사지으며 틈틈이 노래 부르는/ 스물여섯 살 청년 농부 예슬이는/ 요즘 가끔, 때론 자주/ 공연 초청을 받아 도시에 나가요// 이웃 농부들은/ 예슬이가 더 유명해지기 전에/ 사인을 받아야겠다며 농담을 해요/ 그게 진담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청년 농부 예슬이' 중에서)

이렇게 도란도란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며, 간간이 시도 읽으며 그렇게 풍성했던 저녁 시간이었다. 136쪽.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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