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한쪽 구석 추위 녹여준 화로
부채질하며 정성 들였던 약탕기
선조 생활상·지혜 오롯이 담겨
정다운 추억-호기심 자극 톡톡

우리 조상들은 겨울이 오면 어떤 물건들을 사용했을까. 50대 이상이라면 직접 사용한 것들이지만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아 사라진 것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등잔불 아래에서 책을 읽었던 기억도 희미하게 떠오른다. 문풍지가 파르르 떨리는 소리만 들어도 괜스레 추위를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방 한쪽 구석에는 화로도 놓여 있었고 고뿔(감기)이 심하게 들었을 때 할머니가 정성스레 달여 들여온 약탕기에서 퍼져나오는 탕약 향기가 온몸을 감쌌던 기억도 있다.

다른 사람은 아마도 겪어보지 못한 기억일 텐데, 감기가 심하게 들었을 때 술독에 들어가 땀을 흠뻑 뺀 적도 있었다. 그 술독에는 막걸리 냄새가 진동했는데 할머니는 빨리 나아야 한다며 담요로 몇 겹 싸기도 했다. 펄펄 끓는 아랫목에 놓인 술독 안에서 혹시 이러다 막걸리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기억도 난다.

2년 전 창원역사민속관은 '사계절의 민속문화-겨울편'을 전시한 적이 있었다. 약탕기와 화로, 곰방대, 등잔 등 지금은 민속관이나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조상들에겐 일상이었던 물건들. 전통에 대한 막연한 끌림 때문에 도내 여러 민속관을 찾아다니며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찍어두었던 사진을 보니 선조들의 생활상을 상상하게 된다.

▲ 등잔대./창원역사민속관
▲ 등잔대./창원역사민속관
▲ 등잔./창원역사민속관
▲ 등잔./창원역사민속관
▲ 부손. /창원역사민속관
▲ 부손. /창원역사민속관
▲ 화로./창원역사민속관
▲ 화로. /창원역사민속관

◇방안 물건들

△등잔·등잔대 = 등잔 밑이 어둡다. 등잔대가 아래서 받치고 있으니 당연한 얘기다. 아래쪽을 밝히기 위해 등잔대가 비스듬히 기울어진 것도 있다. 등잔대는 등잔을 적당한 높이에 얹어 불을 밝힐 수 있게 고안된 등대다. 맨 아래 넓적한 불판의 재료로는 청동이나 철, 놋쇠, 나무, 도기를 썼다. 들기름이 다 떨어져 석유를 담고 불을 밝혔던 적이 있는데, 시커먼 그을음이 길게 타올라 천장이 시커멓게 될 것 아닌가 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화로 = 마당에서 사용하는 화로도 있지만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건 숯을 담아 쓰는 실내용 불 그릇이다. 화로는 겨우내 꺼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종종 옷을 다림질하는 인두가 담겨 있었고, 알루미늄 주전자가 화로에 걸쳐진 부젓가락 위에 놓여 있기도 했다. 저녁을 지으면서 아궁이는 용광로가 되지만 아침이면 허연 재만 가득하다. 성냥이 귀한 시절(지금도 다시 귀해졌지만), 아궁이에 다시 불을 때려면 이 화로에서 불씨를 가져와야 했다.

△부손·부젓가락 = 부손은 불삽, 부젓가락은 불젓가락이라는 말이다. 화로의 불덩이가 된 숯을 집거나 재를 헤쳐서 화로 아래쪽까지 공기가 잘 통하게 하는 데 사용한다. 앞서 얘기한 대로 주전자 받침대로도 활용했고 고기를 구워 먹을 땐 석쇠를 받치기도 했다. 대체로 무쇠로 만들어졌으며 화로가 황동합금, 즉 놋쇠일 경우 짝을 맞춘다고 부손(부삽)과 부젓가락을 같은 재질로 만들기도 한다. 아궁이에 쓰는 것은 부지깽이다.

▲ 악연./창원역사민속관
▲ 악연./창원역사민속관
▲ 약저울./김해민속박물관
▲ 약저울./김해민속박물관

◇약을 만드는 데 쓰인 물건들

△약연 = 약연이라 함은 좁게는 배 모양으로 생긴 그릇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기에 약재를 넣고 주판알 모양으로 생긴 '연알'을 앞뒤로 밀고 당기며 빻는다. 재료는 돌 나무 청동 놋쇠 무쇠 등 다양한데, 약의 종류에 따라 옥과 같은 값진 재료가 이용되기도 한다. 솔직히 어렸을 때 이 물건을 본 기억은 없다. 일반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지는 않은 듯하다. 40~50년 전만 하더라도 시골이라면 집집이 맷돌은 있었으므로 약재를 갈 때엔 맷돌을 썼지 싶다.

△약저울 = 약저울이라 해서 저울과 달리 특이한 장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 담으면 물그릇, 술을 담으면 술잔이듯이 약방에서 쓰니 약저울이라 하겠다. 대체로 크기가 작다. 한 스무 냥(750g)까지 달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금은방에서도 이 저울을 사용한다고. 지렛대 원리를 이용한 이러한 저울을 맞저울(천칭)이라고도 하는데, 저울 중에서도 가장 정밀도가 높다고 한다. 약방은 안 가 못 봤지만 엿장수들이 이런 맞저울로 엿을 달아 팔던 기억이 난다.

△약탕기 = 약절구보다 훨씬 현대화해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게 약탕기다. 약의 종류에 맞춰 전원 꽂아 단추만 누르면 자동으로 탕약이 완성된다. 예전에는 어땠을까. 야외용 화롯불에 검은색 도기로 된 약탕기를 올려놓고 빨리 달여 아픈 손자 먹이려고 반나절 쪼그려 앉아 부채질하던 할머니의 모습. 약탕기 입구엔 삼베를 두어 겹 덮어씌우고 가장자리에는 새끼를 둘러 묶었다. 달인 약은 베나 수건에 넣어 비틀거나 약틀에 넣어 압력을 가해 짰다.

△약절구 = 이 조그마한 절구는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변천해왔나 보다. 하지만 쓰임새가 달라졌다. 약 대신에 이제는 참깨를 빻기도 하고 마늘이나 생강을 가는데 활용되기도 한다. 요즘 나온 것을 보면 대체로 도자기가 많은데, 나무나 플라스틱으로도 나온다. 절구에 넣은 약을 빻는 도구를 공이라고 하는데, 뭔가를 다지는데 쓰는 도구를 공이라고 한다. 보름달 계수나무 아래 토끼 두 마리도 방앗공이를 들고 번갈아가며 방아를 찧었다.

▲ 떡판과 떡메. /창녕영산민속전시관
▲ 떡판과 떡메. /창녕영산민속전시관

◇음식과 관련한 물건들

△떡시루 = 아마도 집에 떡시루가 있는 집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떡을 집에서 해먹지 못하지는 않는다. 옛날 시루보다 더 간편하고 성능이 좋은 찜솥이 있어 그렇다. 시루라는 말은 떡이나 쌀을 찌는 데 사용하는 둥근 질그릇을 말한다. 자배기 모양이며 바닥에 구멍이 여럿 뚫렸다. 산꼭대기 바위 이름이 시루바위란 게 많은데 이 시루 모양이어서 그렇다. 시루에 쪄서 만든 떡이 시루떡이다. 흰떡은 백설기요 둥글게 뽑으면 가래떡이다.

△떡살 = 쉽게 말해 떡에 찍는 도장을 떡살이라 한다. 주로 절편에 찍어 모양을 낸다. 추정을 하자면 이 떡살에서 풀빵, 붕어빵 틀이 고안되지 않았나 싶다. 풀빵 틀의 모양새나 구성이 유사한 측면이 있다. 떡살의 재료는 주로 나무와 자기, 사기, 백자 등으로 만들어졌다. 어렸을 때 집에 있던 것은 나무로 된 길쭉한 것과 조금 짧은 것 2가지였는데, 꽃 모양 하나와 동물 모양이었다. 가만히 보면 떡살의 문양에서 단청 문양을 엿볼 수 있다.

△떡판·떡메 = 해마다 설날쯤이면 행사장에서 '떡메치기'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보니까 누구라도 떡메가 뭔지는 알겠다. 떡메는 주로 재료가 나무다. 한집에 좀 넉넉하게 먹으려면 장정이 선 자세에서 내리치는 떡메를 사용해야 한다. 이럴 때 아낙은 쩍쩍 붙는 떡을 떼어서 떡판에 다시 뒤집어 놓고 남정네는 다시 떡메를 내리친다. 주로 통나무에 홈을 파서 만든 것은 떡구유라고 하고도 하고 나무나 돌로 만든 납작한 것은 떡판일 하겠다.

◇몸에 착용하는 물건들

△남바위 = 다른 말로 치면 방한모라 하겠다. 자료를 보니 조선 초기 상류층에서 사용하다가 후기에는 서민층에서도 썼다고. 남자들의 모자 이엄, 귀를 가리는 모자에서 비롯됐다. 이 이엄과 같은 여성의 모자를 아얌이라 불렀다. 여자 아이가 아양을 떤다 할 때 쓰는 아양이 아얌에서 비롯됐다. 머리 위쪽이 뚫린 남바위도 아얌과 같이 여성의 모자다. 간혹 시중에 개량한복에 남바위를 쓴 아이가 보인다. 전통을 되살리려는 모습이어서 보기 좋다.

△솜버선 = 솜을 넣어 두껍게 만든 겨울철에 신는 물건. 다른 말로 족의. 한자어로 버선 '襪(말)'.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서양에서 들여온 버선이 '양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버선과 양말을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버선은 신분에 따라 색상이 달랐다. 왕은 빨간색, 왕비는 파란색,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계급 상관없이 흰 버선을 신었다. 겹버선은 솜 없이 겹으로 만들었으며 홑버선은 버선 위에 덧신는 버선이다.

△설피 = 살피라고도 하는데 눈밭에서 미끄러질까 봐 신는 겨울철 보행보조도구다. 이걸 신으면 눈이 깊어도 빠지지 않는다. 경상남도를 벗어나 본적이 없는 이는 이 물건 사용하는 걸 본적 없겠다. 주로 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 산악지대에서는 활용도가 높다. 산간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사냥꾼들도 자주 신었다고 한다. 언젠가 이런 설피를 북극 에스키모 사람들이나 북미 원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모습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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