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지방법원에 출입한 지 두 달쯤 됐을 때다. 선고 재판을 취재하고자 조금 일찍 법정을 찾았다. 바로 앞 재판이 진행됐고 판사가 판결문을 읽어내려갔다. 다른 재판 내용을 확인하느라 범죄 사실도, 형량도 못 들었는데 '부양해야 할 배우자와 어린 자녀가 있다'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덥수룩한 머리에 키가 크고 마른, 30대 후반쯤 돼 보이는 남성이 피고인석에 서 있었다.

특별한 감형 이유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내용이 내게 선명히 와 닿은 것은 판사 말에 담긴 진정성과 덧붙인 말 때문이다. "진짜 열심히 사셔야 해요." 훈계가 아니었다. 깊은 응원처럼 느껴지는 그 10자가 하도 간절해 아직도 그날 법정의 잔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피고인은 판사에게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는 고개를 마저 들지 못한 채 그대로 법정을 나섰다.

지난달부터 '판본세(판결문으로 본 세상)'라는 코너를 쓰고 있다. 취재를 위해 여러 판결문을 접하다 보니 '죄명'이라는 가림막에 가려진 사회적 약자의 아픔, 불합리한 구조를 들여다보는 판결문이 더러 있었다. '청소년 성매매'를 다룬 편에서 재판부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거미줄에 걸린 아이들이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고 했다. 피해자 처벌불원서를 특별감형 이유로 인정하지 않은 재판부는 피해자가 제출한 '처벌불원서'가 아닌 처벌불원서를 쓴 '피해자 마음'을 들여다봤다.

물론 판사는 공명정대해야 한다. 그러나 사건의 표피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읽으려는 노력이 있기를 바란다. 그 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기를 바란다. 그런 판결문을 더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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