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패배 인정, 체제 유지하게 해
트럼프 이제 선거 결과 승복하시오

'GG'라는 게임 은어가 있다.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용어다. 풀어쓰면 'It was a Good Game'에서 'GG'를 따온 것이다. 게임을 하다가 패배가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GG'를 치고 게임을 종료한다. 패배를 선언하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에서 이런 패배선언을 하게 된 데에는 게임의 시스템적 특성 때문이다. 게임 시스템상 패배가 되려면 'Elimiation', 속칭 '엘리'라고 부르는 상황뿐인데, 어느 한쪽의 모든 건물이 파괴되는 상황이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다 보면 건물이 다 파괴되기 전에 도저히 승기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된다. 그 뒤에는 게임을 계속해봤자 의미가 없다. 이미 승부가 결정 난 상태에서도 한쪽 진영의 건물이 다 파괴되기 전까지는 패배가 선언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판단으로 게임을 종료하는 것이다. 만약 그러지 않고 건물을 짓는 일꾼 유닛을 몰래 숨겨두고, 여기저기 쓸데없이 건물을 짓게 되면, 아무런 의미 없는 시간 끌기를 한다고 비난을 받게 된다. 실제로 게임상에서 그런 플레이를 한다면, 여기 지면상에서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욕을 먹게 될 것이다.

스타크래프트는 e스포츠의 시초격인 게임이다. 혹자는 컴퓨터게임이 무슨 스포츠냐 하겠지만,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그것도 스포츠라고 여길 것이다. 여느 스포츠 종목 못지않게 '피 터지는' 치열함이 있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치열하게 게임을 한 뒤, 한쪽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GG'를 치게 되면, 그 게임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숭고함이 느껴질 때도 있다. 권투경기에서 피가 튀고, 눈가가 부어 떠지지도 않는 험한 몰골이 된 선수가 자신을 때리고 아프게 한 승리자에게 다가가 포옹을 하는 걸 볼 때와 유사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GG'는 '좋은 게임이었어', '당신과 이런 멋진 게임을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 등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게임이 끝나고 패자가 승자에게 이런 말을 하면, 관전자들은 승자뿐만 아니라 패자에게도 존경심을 가질 수 있다.

선거도 게임이다. 선거를 치르고 나면 이긴 자와 진 자가 명확하게 갈린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고도 한다. 민주주의 종주국은 미국이다. 그런데 얼마 전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는 'Good Game'이 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우리의 경험으로는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복잡한 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승부가 명확하게 났다. 하지만, 트럼프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부정선거다, 개표가 잘못됐다, 재검을 해야 한다, 뭐 이런 비합리적인 말들을 쏟아내며 시간을 끌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세고, 영향력이 있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저렇게 형편없는 것이었나 싶다.

현재 민주주의 선거에서는 한 표라도 더 받은 사람이 이기는 거다. 한 표 적게 받은 사람의 처지에서는 아쉬움이 클 것이다. 그래도 시스템은 시스템이다.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온갖 억지를 부리며 버티면 민주주의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우리도 지난 2012년 대선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심취해 수억 원이 모금되고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바로 직전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에서는 진영이 바뀌어 부정선거 음모론이 퍼졌다. 미국 비아냥대기만 할 것이 아니다.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초등학생에서부터 40대 어른까지 'GG'를 기꺼이 쳤던 마음가짐을 상기하자. 트럼프, 'GG'를 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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