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문예지 가을호 발간
시·수필·아동문학 조명

꾸역꾸역 계절은 돌고 돈다. 도내 문예지들이 하나씩 가을호나 하반기호를 보내왔다. 쓸쓸한 가을에도 꽃이 핀다는 걸 아는 이들, 그런 꽃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생을 발견하는 이들이 보낸 가을편지처럼, 유독 소중하게 책장이 넘겨지는 요즘이다.

◇서정과 현실 = 먼저 창원 지역에서 시와 시조를 중심으로 발행되는 반연간 문예지 <서정과 현실> 2020 하반기호(35호). 이번에는 한양대 유성호 교수의 '서정시를 읽는 순간'을 권두시화에 담았고, 기획특집 '8인의 소시집' 편에서 홍일표, 곽효환, 조말선, 조정인, 박현덕, 김진희, 서정자, 이선중 시인의 시를 실었다. 또, 중요시인 자세히 읽기 항목에서는 원구식 시인을 초대했다.

발행 시기가 가을이기에 여름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많지만 개중에 가을 서정의 순간들도 적지 않았다.

"누군가 너무 많은 저녁을 집어던지고/ 저수지 끝에서 푸드득 새 한 마리 날아오른다" (홍일표)

"머릿속에 수국을 켜두고 자는 것처럼 어제도 나는 내 기분을 쳐다보며 잠을 잤지 대체 기분이 어떠냐고 네가 물었지만 난 물결이라고 했지" (조말선)

"멀리 보긴 이젠 늦어 잠깐씩 둘러본다/ 간이역 팻말로 선 버스 정류장이/ 조붓한 골목 주변을 오래도록 지켜낸다" (이승은)

◇목향수필 = 창원에서 수필을 공부하고 수필가로 활동하는 목향수필문학회가 발간하는 연간 동인지 <목향수필> 7호.

올해는 영화이야기를 특집으로 꾸몄다. 목향수필회 배소희 회장은 발간사에서 코로나 시절에도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정서적 교감은 필요하고 이는 결국 글을 쓰는 이들이 담당할 몫이라는 말을 했다.

"실수를 경험하지 않는 인생이란 없을 것이다. 짜인 각본만을 읽거나 탄성조차 느껴지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면 어찌 전율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겪게 될 고난을 헤쳐나갈 때 어떤 위로의 말 한마디가 버팀목이 되어줄까? 때로는 자기 자신의 한계를 부둥켜안을 때 첫걸음을 뗄 수 있는 용기가 주어진다." (김영미 '세라비, 이것이 인생' 중에서)

"(갑작스런 사고로 죽은) 딸을 가슴에조차 묻지 못한 엄마는 등을 바닥에 붙이고 몇 날을 누워만 있었다. (중략) 아픔이 바닥에 눌어붙어 자리를 털어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중략) 남동생은 뭔가 결심한 듯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오래된 구들을 뜯고 돌을 깔았다. 자글자글 끓는 온돌 방바닥에 쓰린 마음을 기대기를 바라는 동생만의 효도법이 시작되었다." (강명자 '아들의 효도법' 중에서)

◇열린아동문학 = (사)동시동화나무의숲에서 발간하는 아동문학 계간지 <열린아동문학> 2020 가을호(86호). 작가 이름보다 작품을 우선해 싣는다는 원칙처럼 두꺼운 책자 안에 동시, 동화에서 평론까지 가득 들어 있다.

"서리 내린 아침/ 풀잎들이/ 꺼멓게 숨이 죽었다.// 김장하려고/ 하느님이/ 들판에 뿌린 소금인가?" (김은영 된서리 전문)

"오가는 사람들 쉬어가고 쑥이며 두릅이며 나물도 뜯게 하고 가을이면 밤도 줍고……. 하느님이 지으시는 농사 이웃과 나누어 먹으면 그게 행복인 거지. 짐들은 2층에 올려 정리하고 1층은 아예 만남의 장으로 꾸미는 거야. 그래서 늘그막에 이웃과 이야기도 나누고 책도 읽고 차도 마시면 그냥 나눔터가 되는 거지 뭐." (문이령 '빈집에 온 손님' 중에서)

"할아버지 저는 건너편 옥탑방에 사는 3학년 김수호에요. 화분 깨뜨린 거 죄송해요. 근데 벌은 벌써 받았어요. 가시가 마음을 콕콕 찌르고, 불안하고, 나쁜 꿈도 꾸었거든요. 그치만 할아버지가 주시는 벌도 받을 거에요." (우성희 '건너편 친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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