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문 연 자생의원 건물, 근대의료박물관으로 보존
일제 수모 버텨낸 거창교회, 지역 기독교 역사 상징물 돼

거창군 거창읍은 여러모로 독특한 곳이다. 어찌 보면 다른 군 지역 도심과 비슷한데, 달리 보면 도시적인 느낌이 꽤 강하다. 지금 번화가는 군청 앞 거창로터리에서 거창전통시장에 이르는 중앙로다. 이 도로에서 한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거창군 문화거리'란 곳이 있다. 거창읍 원도심으로 옛 번화가다. 2011년 거창군이 도시재생을 위해 의욕적으로 만든 곳인데, 아직은 문화적으로 활성화됐다고 할 정도는 아닌 듯하다. 오랜 가게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네일숍과 미용실이 채우고 있는데, 문화거리라기엔 상업적인 분위기가 더 강하다. 그래도 거창군이 지금도 계속 문화거리 활성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거창근대의료박물관은 문화거리를 대표할 만한 명물이다. 원래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옛 자생의원 건물이다. 거창 1호 개인병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성수현(1922~2008) 원장이 1954년에 건물을 짓고 1958년에 개원했다. 현대건물인 병원동과 입원동, 한옥 건물인 주택동이 완벽하게 남아 있다. 전국에서도 이 정도로 보존이 잘 된 지역 의료시설은 보기 드물 것 같다.

2013년 국가 등록문화재(근대유산) 제572호로 지정됐고, 2016년 거창군이 근대의료박물관으로 개관했다. 병원동과 주택동을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데, 각종 의료기기와 약병, 차트함과 의료서적 등 병원에서 쓰던 물건을 그대로 전시했다. 지금 기준으로 앙증맞은 대기실, 진료실, 수술실, 약제실, X-선실 등 내부 공간들을 둘러보는 것도 재밌다.

▲ 거창근대의료박물관(옛 자생의원). /이서후 기자
▲ 거창근대의료박물관(옛 자생의원). /이서후 기자
▲ 거창근대의료박물관(옛 자생의원). /이서후 기자
▲ 거창근대의료박물관(옛 자생의원). /이서후 기자

자생의원이 아니라도 문화거리에는 곳곳에 근대의 옷을 걸친 멋진 건물이 많다. 이런 건물 덕분에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복고) 감성이 가득한 거리가 꽤 매력적으로 보인다. 자생의원 가까이에 문화거리센터도 있다. 문화거리를 활성화하려고 만든 곳인데, 건물을 제법 잘 지었다. 1층은 사무실, 2층 공간은 주민들 동아리 모임에 활용되고 있다.

문화거리센터에서 거창 위천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하천변에 붉은 벽돌로 된 거창교회가 나온다. 말끔한 겉보기와 달리 거창 지역 기독교 역사가 담긴 유서 깊은 곳이다. 1909년 거창에서 금광업을 하던 분이 처음 사무실에서 예배를 시작했고, 이후 거창읍에 초가집을 구입해 예배당으로 삼았는데, 이 초가집이 거창교회의 시작이었다.

거창교회는 일제강점기에 신사 참배 거부로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한국전쟁 중에는 거창고 설립을 지원하기도 한, 거창 근현대사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거창교회 앞으로 위천이 흐른다. 이 하천은 거창을 대표하는 물줄기다. 덕유산과 기백산에서 시작해 거창 도심을 가로지른 후 황강으로 합류한다. 도심 위천 강변은 그대로 훌륭한 산책로다. 한가로이 거닐다 보니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기운다. 가을 햇살을 등진 갈대가 환하게 손을 흔든다.

▲ 성수현 자생의원 원장 생전 진료 모습./이서후 기자
▲ 성수현 자생의원 원장 생전 진료 모습./이서후 기자
▲ 위천 산책로. /이서후 기자
▲ 위천 산책로. /이서후 기자
▲ 거창교회. /이서후 기자
▲ 거창교회. /이서후 기자

"제가 태어난 병원, 음악 흐르는 박물관 됐죠"

변수연 거창근대의료박물관 직원

지난달 20일부터 오는 13일까지 평일 점심때마다 거창근대의료박물관 정원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거창군이 힐링이 필요한 직장인 또는 주민들을 위해 마련한 '정원 음악회'다.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 낮 12시 30분부터 20분 동안 진행된다.

변수연(40) 거창근대의료박물관 직원은 "주변에서 식사를 한 뒤 짬을 내서 음악회에 오시거나, 지나가다가 음악 소리를 듣고 우연히 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거창근대의료박물관은 1954년 개원한 옛 자생의원으로 거창 출신인 변 씨도 이 병원에서 태어났다. 변 씨는 "당시 거창을 포함한 인근 지역 중 수술실과 입원실이 있는 병원은 드물어 많은 사람이 이용했다"며 "박물관 관람객에는 돌아가신 어머님이 과거 이곳에서 치료받은 적이 있다거나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온 변 씨는 거창에 대해 "다른 지역과 비교해 편의시설이 잘되어있다"고 말했다. "강변로, 공원, 시장, 마트 등이 있고 웬만한 거리는 다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차 타고 나갈 일이 잘 없다.(웃음) 그리고 인심도 좋다. 주변 상점 주인들이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눠 주기도 하고 살갑게 잘하신다."

68세 동갑내기 바리스타 "주민들 억양 세지만 속정 깊어요"

실버카페 3년 차이국·장순연 씨

▲ 거창군 문화거리 실버카페웃음 이국(오른쪽) 장순영 바리스타./이서후 기자<br /><br />
▲ 거창군 문화거리 실버카페웃음 이국(오른쪽) 장순영 바리스타./이서후 기자
 

거창군 '실버카페 웃음' 1호점은 지난 2015년 문을 열었다. 이곳 바리스타는 만 60세 이상 어르신이다. 카페 수익금은 노인일자리사업 운영과 어르신 인건비로 전액 사용된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향긋한 커피 향기와 바리스타의 따뜻한 미소가 반긴다.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를 건넨 이들은 68세 동갑내기인 이국·장순연 씨. 3년 차 바리스타다. 카페라테를 주문하며 "오늘은 거리가 한산한 것 같다"고 말하자 이들은 "농번기라, 사과를 딴다고 다들 바빠서 그렇다"고 웃으며 말했다.

거창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이곳)사람들이 말수가 적고 억양이 억세지만 인심이 참 좋다"고 말했다. "처음엔 퉁명스럽다고 오해를 많이 한다. 하지만 지내다보면 사람들이 속정이 깊다는 걸 알게 된다. 거창에 살다가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 중에는 사람들 정이 그리워서 울고 갈 정도다."

"웃음이라는 카페 이름이 너무 좋다"는 이야기를 건네자 이들은 간판을 가리키며 "'웃음'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을 잡고 있는 모양 같지 않느냐"며 되묻는다. 2000~3000원의 싸고 맛있는 커피와 인심 좋은 어르신 바리스타가 있는 곳. 짧은 대화였지만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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