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김참 시인 작품 '미궁'으로 올해 사이펀문학상
진해 이충기 씨 '유기된 일기장'으로 신인상 당선돼

제5회 사이펀문학상 수상자로 김해 출신 김참 시인이 선정됐다. 또, 신인상에는 허진혁, 이충기 씨가 당선되었는데, 이 중 이충기 씨는 창원시 진해구에 본가가 있는 대학생이다.

이 문학상은 부산에서 발행하는 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이 주관하는데, 전국 문인을 대상으로 한다. 올해는 공교롭게도 경남 출신 문인들이 본상과 신인상을 다 받게 됐다.

심사 대상은 지난 1년 동안 <사이펀>에 발표한 신작 시다. 이번에는 2019년 겨울호에서 2020년 가을호까지 310여 편 중에서 수상작을 골랐다. 모두 9편이 최종심사에 올랐는데, 심사를 맡은 강은교, 김성춘 시인은 2020년 여름호에 실린 김참 시인의 시 '미궁'을 선정했다.

김성춘 시인은 심사평에서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면서 고통스러운 현실의 삶을 큰 폭의 상상력으로 아름답게 전개시키고 있어 높은 신뢰감을 줬다"고 했다.

"사흘 내리 내린 눈이 모든 것을 덮었다. 구층 우리집도 눈 속에 파묻혔다. 냉기 도는 계단을 밟으며, 나는 일층으로 내려왔다. 현관을 박살내고 들이닥친 눈이 우편함 앞까지 밀려와 있었다. 오월도 끝나 가는데 무슨 눈이 이토록 퍼붓는단 말인가. 누군가 뚫어놓은 통로를 따라 막장 광부처럼 조심조심 걸었지만 눈 밖 세상으로 통하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언 손 비비며 천천히 걷다 발을 헛디뎌 다른 통로로 굴러 떨어졌다. 꽁꽁 얼어붙은 사람 몇이 차가운 눈 위에 쓰러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흔들어 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온기도 생기도 없었다. 어두운 통로를 휘감고 돌며 낮은 기타소리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으로 한참 걸었지만 통로는 막혀 있었다. 언 손 불어가며 길을 내는 동안 시간은 물처럼 흘렀다. 배고프고 춥고 졸음도 쏟아졌으나 잠들면 얼어 죽을 것 같아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갔다. 하루하루가 꿈처럼 지나갔다. 머리부터 발톱까지 꽁꽁 얼었지만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눈을 파헤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벽이 허물어지고 다른 통로가 나타났다. 멀리서 희미하게 불빛 하나 반짝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불 켜진 창이 보였다. 얼어붙은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여기 누가 있냐고, 아무도 없냐고, 아무도 안 계시냐고, 커다랗게 소리 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미궁' 전문)

김참 시인은 지난달 지리산문학회와 계간 <시산맥>이 주관하는 제15회 지리산문학상에서도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 시인은 199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문학세계사, 1999년), <미로여행>(천년의시작, 2002년), <그림자들>(서정시학, 2006년),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파란, 2016년)에 이어 최근 4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그녀는 내 그림 속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려요>(문학동네, 2020년)를 냈다.

사이펀문학상 신인상은 전국 공모로 진행한다. 올해는 시 560여 편이 접수됐다. 올해 신인상 수상자는 현직 약사 허진혁(31·대전) 씨와 이충기(21·창원·대학생) 씨다. 이 중 이충기 씨는 현재 광주대 문예창작과 3학년이다.

심사를 맡은 송진 시인은 이 씨의 시 '유기된 일기장' 등 10편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몽환과 우울의 잠수함 속에서 시의 꽃을 바라보는 것 같다. (중략) 그는 물집을 굴리며 걸어가는 마술사인가, 1826년에 태어난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모로의 환생인가. 때로는 그림처럼 때로는 화가처럼 때로는 연극처럼 때로는 연극배우처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그는 한국의 시의 미래를 예고한다."

시상식은 다음 달 13일에 열릴 예정이나 코로나 상황에 따라 날짜와 장소는 유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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