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적이 있어. 어느 비 오는 날 한적한 길을 걷는데 뒤통수에 꽃잎 하나 붙은 비둘기를 만난 거야. 녀석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이리. 저리. 요리. 조리. 돌리면서 폼을 잡더라고. 비둘기 고개 돌리는 거 봤지? 휙! 휙! 하고 되게 빠르거든. 그래도 꽃잎이 안 떨어지는 거야. 그게 왜 그렇게 웃긴지. 왜 그런 거 있었잖아. 학교 다닐 때. 친구 등에다 바보라든지 고자라든지 하는 글자가 적힌 종이를 붙여두고 낄낄대던. 역시 젤 재미있었던 건 선생님의 등에 그 선생님의 별명을 붙이는 거였지. 선생님의 태도가 태연하고 근엄할수록 더욱 웃길 수밖에 없는 그 역설의 장난. 아마도 비둘기를 보고 그 장난이 생각났던가 봐.

생각해보면 살아오는 내내 내 등에도 무언가 그런 종이 하나쯤은 붙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잘난 척, 멋있는 척할 때마다 나를 비웃는 사람이 꼭 있었거든. 내 모자람이 탄로 난 거 같아 꽤 오랫동안 우울해하고 그랬어. 근데 지금은 말이야. 물론 여전히 나는 모자라지만. 아무튼, 지금은 말이야. 그런 종이가 붙어 있는 걸 알아도 그래서 사람들이 비웃어도 계속 잘난 척, 멋있는 척할 수 있을 거 같아. 뭐 필요하면 스스로 등에다 바보 병신이라고 써 붙이고 다닐 수도 있어. 비웃음은 슬쩍 받아넘기지. 뭐 어때? 난 원래 이렇게 생겼는데. 이런 거 뻔뻔함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삶의 여유라고 해야 할까. 뭐 아무튼 나이가 들어 그런지 그런 게 생겼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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